[인천/경기/인천人, 인천을 말한다]<9>오경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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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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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정체성이 없다고? 오고 싶게 만들면 되지”

인천 사회운동의 ‘대부’ 오경환 신부는 “올해는 도덕적이고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추구하는 정치인을 뽑아 선거혁명을 이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인천 사회운동의 ‘대부’ 오경환 신부는 “올해는 도덕적이고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추구하는 정치인을 뽑아 선거혁명을 이뤄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영국 동아닷컴 객원기자 press82@donga.com
2년 전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창립 18주년 행사장. 축하 연주회에 백발의 신부가 등장했다. “제가 은퇴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4년 동안 매일 2시간씩 연습을 해서 매끄럽게 반주할 정도는 됐지요.” 영화 ‘미션’ 주제곡을 연주하고 가곡 ‘기다리는 마음’ 등을 멋지게 불렀다. 가톨릭 인천교구 소속 성직자 활동을 마칠 때 한 약속을 지키는 순간이었다. 그가 인천 사회운동의 대부 오경환(세례명 프란체스코 하비에르·75) 신부이다.

부천가톨릭회관에서 만난 오 신부는 학자풍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1992년 인천경실련이 창립할 때부터 공동대표를 맡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과 인천대 시립화 등 인천 주요 이슈를 해결한 행동하는 종교인이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에 이사 오면서 인천과 첫 인연을 맺었다. 1963년에 신부가 돼 인천 송림동성당, 화수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냈다. 당시 초대 인천교구장이던 나길모 주교의 권유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1974년에 귀국해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를 지냈다.

사회교리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면서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정의, 공동선, 평화, 가난한 사람이 그에게 삶의 키워드다. 1980년대 생소했던 토지공개념을 연구하던 중에 1990년대 초 경제정의를 외치는 경실련의 취지를 듣고 바로 가입했다. 그의 나이 50대 중반이었다.

인천 간석2동 성당 주임신부로 1990년에 인천으로 돌아와 목회활동을 하던 중에 인천 선인재단 분규사태가 터졌다. 범선인학원정상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공동대표로 투쟁을 전개해 시립 선인학원을 일구었다.

1992년에 고 임송산 스님과 함께 인천경실련 공동대표를 맡아 본격적인 지역운동을 전개했다. 창립 이래 회원의 회비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1994년엔 시의원들이 해외 시찰을 가려 하자 제동을 걸었다. 시의원 등 9명을 고발했다. 시의원들이 ‘헌법기관을 시민단체가 고발하느냐’고 반발하자 ‘우리가 시민인데 누가 더 상위개념이냐’며 장문의 글을 쓰면서 맞섰다. 결국 조례가 제정돼 외유성 해외연수를 막았다. 이후 지자체장 출마자의 공약을 검증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2000년대 들어 인천항만공사의 설립을 주도하고 중국 수출을 위한 컨테이너선의 정기운항에도 기여했다.

그는 매달 인천시민원로회의에 참석한다. “인천시장이 지역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리이다. 공개행정으로 투명성을 높이는 좋은 제도”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공부하는 신부, 연구하는 신부이다. 온라인 사이트 ‘과학과 종교’를 운영하고 있다. 1981년 안식년 때 미국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과학과 종교’란 과목을 들으면서 성경의 새로운 해석에 충격을 받았다. “현대인은 과학을 교육받는데, 천문학 생물학의 발견을 듣게 되면 성경 내용과 다르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해석의 괴리를 설득력 있게 푸는 것, 현대과학과 신앙의 차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작업이지요.” 그가 쓴 종교사회학은 대학원생들의 필독서가 됐다. 지난해 가톨릭학술상 공로부문을 수상했다.

오 신부는 시민단체의 권력화를 철저히 경계했다. “경실련 회원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최소 1년 전에는 탈퇴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표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순수성을 잃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는 신념에 따르는 것이므로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합니다.”

총선과 대선의 해를 맞아 조언을 구했다. “쉽지 않겠지만 도덕적인 정치인을 뽑아야 합니다.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을 찾아야지요. 결국은 시민의 책임입니다.”

그에게 인천은 남다르다. “최근 인천 북항 배후단지 개발과 관련해 대기업이 일부를 기부한다는 보도를 보고 우리가 주장했던 것이 실현되는 것을 확인했지요. 인천이 살기 좋은 곳이 되길 기도합니다. 인천이 정체성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찾아 떠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탓하지 말고 인천을 지키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뭉쳐 인천으로 오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끝으로 새해 희망을 물었다 “선거를 치르고 결과에 대해 시민들이 행복해하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학과 신학에 관한 입문서를 남겨 평화와 믿음이 넘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선홍 기자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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