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유계리는 내가 태어난 곳이었으나 지금은 논으로 변하여… 출가입산한 후 60년 만에 고향마을을 돌아본 소회를 담아 고향방문 기념비와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보은탑을 세우고 조부모와 부모님의 4기 묘를 화장한 유골을 탑 지하에 보관한 사실도 알려둔다.’
이달 2일 입적한 지관 스님이 지난해 6월 자신의 생일에 문도(門徒)들에게 전한 유훈(遺訓) 7가지 중 마지막 내용이다. 간소한 다비식과 수행자의 자세 등을 당부한 나머지 유훈과는 성격이 다르다.
스님의 다비식 다음 날인 7일 찾은 유계마을 들판. 스님이 지은 고향방문 기념비명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마치고 6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애틋한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4세 때 어머니를, 15세에 아버지를 잃은 어린 시절과 큰 병에 걸린 자식을 치유하기 위해 근처 절에 자신을 보내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출가수행 과정 등을 3000여 자에 자세히 기록했다. 이 기념비와 부모보은탑은 2010년 8월 15일 스님의 문도와 지역 인사 등 130여 명이 세운 것이다.
스님은 기념비에 칭송 받는 효자나 나라를 구한 장군, 유학자 정몽주 등을 공동체를 면면히 계승해온 의사(義士)로 표현하면서 “오늘의 우리들도 일월(日月)의 정기를 모아 남과 북이 통일되고 국민 모두 하나 되어 이 나라 이 민족을 복되도록 해 달라. 모든 중생의 고향인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그 고향을 지키며 공동의 도덕을 선양 전승해온 여러 위대한 선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경주 이씨 집성촌이던 유계1리에는 30여 가구가 살았지만 10여 년 전 마을에 농업용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일부 논을 제외하고 수몰됐다. 지금 유계마을에는 저수지 아래쪽에 60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 마을 이장 이종구 씨(59)는 “누구라도 고향과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출가승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게 통념이지만 출가는 오히려 속세와의 더 크고 깊은 인연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난다는 것이 불교의 정신이다. 고려시대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도 국존(國尊·임금의 스승) 자리에 올랐지만 병든 어머니를 직접 모시기 위해 사직하고 경북 인각사로 내려갔다고 보각국사비에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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