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 “밑져두 워떡해유”… 도축업자 “깡마른 소뿐, 허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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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값 파동…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우울한 논산 우시장 가보니

소값 파동에 애꿎은 소만… 소값 폭락에 항의하는 전남 순천지역 축산농민 70여 명이 5일 호남고속도로 순천나들목 입구에서 고속도로 
진입을 제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중간에서 농민과 경찰의 몸싸움에 시달리던 소가 지쳐 쓰러져 있다. 죄 없는 소만 고통받는 하루였다.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소값 파동에 애꿎은 소만… 소값 폭락에 항의하는 전남 순천지역 축산농민 70여 명이 5일 호남고속도로 순천나들목 입구에서 고속도로 진입을 제지하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중간에서 농민과 경찰의 몸싸움에 시달리던 소가 지쳐 쓰러져 있다. 죄 없는 소만 고통받는 하루였다.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키우던 송아지를 팔려고 5일 새벽 충남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 소 시장에 왔지만 결국 허탕을 친 한 축산농이 송아지와 함께 힘없이 돌아서고 있다. 논산=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키우던 송아지를 팔려고 5일 새벽 충남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 소 시장에 왔지만 결국 허탕을 친 한 축산농이 송아지와 함께 힘없이 돌아서고 있다. 논산=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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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같아선 키우는 소들 사료 값도 못 댕게. 그 돈이라도 벌어 볼라고 송아지 세 마리 데리고 나왔시유. 밑져두 워떡해유. 당장 돈이 없는데 팔아야지유. 소 값, 사료 값 이런 식으로 1년만 더 가믄 도산할 사람들 한 둘 아니어유.”

5일 오전 5시, 충남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 논산축산업협동조합 소 거래시장 앞. 축산농민 최모 씨는 심란한 표정으로 연방 담배를 피우며 소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남 부여에서 소 30여 마리를 키우는 그는 폭등한 사료 값을 감당하지 못해 키우던 송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한 달 소 사료비가 마리당 15만 원씩 총 400만 원이 넘는다”며 “오늘 송아지를 다 못 팔면 그 돈을 어떻게 댈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 캄캄한 새벽 소시장, 캄캄한 미래


이날 논산 소 시장 앞에는 오전 4시부터 최 씨처럼 소를 팔려고 모여든 축산농가들의 차량이 속속 모여들었다. 영하 10도의 추위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온 70여 대의 트럭에는 큰 소 또는 송아지가 1, 2마리씩 실려 있었다. 상당수는 전체 소 사육규모가 채 10마리가 안 되는 영세농들이었다.

도축업자나 소를 100마리, 200마리씩 키우는 축산 전업농들은 빈 차량을 끌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도축업자들은 무게가 600∼700kg에 이르는 큰 소들을, 축산 전업농들은 송아지를 사러 왔다고 했다.

경기 의정부에서 축산업을 하는 주창길 씨도 이날 소를 사러 논산에 왔다. 그는 “요새 소가 애물단지라고 해도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라 소를 사러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혹시 압니까? 지금 산 송아지를 키워서 내다팔 2년 뒤쯤엔 소 값이 폭등할 수도 있잖아요. 요새 송아지 값이 싸니까 일단 사두자는 마음인데…. 일종의 도박이죠.”

○ 300만 원짜리 송아지 2년 키워 360만 원에 팔아


오전 6시. 드디어 소 시장의 문이 열렸다. 한우 송아지 65마리, 한우 130여 마리가 매물로 나왔다. 송아지는 보통 마리당 120만 원 선에서 흥정이 이뤄졌는데 이날은 60만 원짜리도 있었다. 2년 전 한우 송아지 한 마리 값이 200만∼300만 원 선이었던 데 비하면 값이 최고 5분의 1까지 떨어진 것이다.

도축용 큰 한우들도 전보다 훨씬 떨어진 300만 원 안팎에 거래됐다. 730kg짜리 한우를 360만 원에 판 임성묵 씨는 “2010년 306만 원 주고 산 송아지를 2년 동안 키워 360만 원 받았다”며 “그동안 사료 값만 200만 원 넘게 들었으니 150만 원을 손해 본 셈”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그나마 지난달에는 더 헐값이었는데 오늘은 명절을 앞두고 있어 좋은 값을 받은 편”이라고 씁쓸히 웃었다.

임진택 논산 축협 계장은 “2, 3년 전만 해도 소 사료 한 포대 값이 4000원대였는데 지금은 1만2000원을 호가한다”며 “그렇다 보니 갈수록 쌓이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밑지고라도 소를 팔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장에 모인 100여 명의 인파 중 3분의 2는 소를 팔러 온 사람들이었다.

○ 30%는 거래 불발, 날로 위축되는 축산시장


하지만 이날 매물로 나온 소의 30%가량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결국 다시 돌아가야 했다. 도축업을 하는 임성천 씨는 “비싼 사료 값 때문에 제대로 못 먹여 부실한 소가 많다”며 “도축업자들은 좀 비싸도 상태가 좋은 소를 선호하는데 영세농이 많다보니 장에 나온 소들의 태반이 살 수 없는 소”라고 했다. 실제 이날 장을 찾은 도축업자 상당수가 허탕을 치고 빈손으로 떠났다.

치솟는 사료 값에 허기진 소, 견디기 힘든 축산농가, 마땅한 소를 찾을 수 없는 도축업자…. 자연히 소 시장도 날로 위축되고 있다. 논산 소 시장은 원래 오전 5시에 열렸지만 작년 12월부터는 개장시간을 오전 6시로 늦췄다. 다음 달부터는 1주일에 두 번 월, 목요일에 열던 장을 ‘3·8장(5일장)’으로 바꿀 예정이다. 소도, 사람도 2년 전보다 3분의 1로 줄었기 때문이다.

‘한우를 지키는 것은 농촌을 지키는 것이다.’ 시장 입구에 붙은 표어가 무색한 2012년 새벽 소 시장의 모습이었다.

한편 전국한우협회 소속 10개 시도지회는 이날 당초 한우 1000마리를 몰고 청와대 앞으로 집결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서울로 진입하는 전국 주요 고속도로 요금소와 길목에 경찰을 배치하고 축산농민의 상경을 원천봉쇄했다.

논산=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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