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군기잡기식 檢감찰도 안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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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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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선 수사지침 살펴보니

수사절차 TF 워크숍 3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수사 실무 지침의 조기 정착을 위한 전국 수사절차 정비 TF팀장 워크숍’이 열렸다. 참석한 경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워크숍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수사절차 TF 워크숍 3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수사 실무 지침의 조기 정착을 위한 전국 수사절차 정비 TF팀장 워크숍’이 열렸다. 참석한 경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워크숍이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검경 수사지휘 체계를 조정한 개정 형사소송법이 1일부터 시행된 가운데 경찰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대한 실무 지침을 마련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법 개정 과정에서 불만이 컸던 경찰이 법을 바꾸지 못할 바에는 법령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검찰과의 관행적인 주종(主從)관계를 청산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경찰청이 지난해 12월 30일 전국 경찰서에 내려보낸 ‘대통령령 제정 시행에 따른 수사 실무지침’을 보면 검사의 수사지휘에 관한 구체적 한계와 관련 법규정이 일일이 명시돼 있다. 경찰이 법 테두리 안에서 수사주체로서 재량권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구 경찰이 2일 검사의 내사 지휘를 처음 거부한 데 이어 인천에서도 같은 사례가 연이어 나오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 “관행 빙자한 검사의 횡포 이제 그만”


경찰은 우선 검사가 경찰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사건을 넘기라고 명령할 경우 사건 관계인의 인권침해 가능성이 명백할 경우에만 지휘에 따르기로 했다. 피의자 등이 경찰 수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경찰관의 불법 체포·감금·폭행 등 가혹행위가 있을 때만 사건을 검찰에 넘긴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검사가 넘기라고 하면 무조건 송치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앞으론 법에 근거해 처리하겠다는 것”이라며 “피의자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판단이 엇갈리면 담당 경찰관이 이의신청을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경찰은 검사들이 불시에 유치장 감찰을 나와 사무 감사를 했던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피의자가 체포·구속돼 있거나 과거에 불법구금을 당했다는 상당한 의심이 있는 경우만 검사에게 관련 서류를 보여주도록 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유치장 감찰은 법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경찰에 대한 군기잡기 식으로 악용돼온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내사종결 전에는 검사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경찰이 검찰에서 내려온 사건 중 고소·고발건만 수사하고 진정·탄원은 접수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검찰이 지난해 고소·고발건 외에 경찰에 이첩한 진정 및 탄원은 8321건. 검사와 수사관 등 검찰이 6544명의 인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접수된 진정·탄원을 직접 조사하려면 1인당 연간 1.3건의 사건을 더 맡아야 한다. 경찰은 “1인당 연간 내사 건수가 경찰은 13건인 반면 검찰은 1.6건에 불과하다”며 “경찰이 이를 거부하더라도 검찰 업무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 경찰에 이어 인천 중부경찰서와 부평경찰서는 3일 인천지검이 수사 개시 전 내사 지휘한 사건 2건에 대해 경찰청 지침에 따라 접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인천 검찰이 중부경찰서에 넘기려 했던 사건은 80대 남성이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며 진정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개정 형소법 시행령에 근거해 검사는 수사에 대해서만 경찰을 지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수사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진정 탄원 풍문 등을 경찰에 이첩하는 것은 내사에 해당해 지휘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검경이 서로 사건을 미루면 애꿎은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 경찰이 접수를 거부한 사건의 진정인 A 씨는 “검찰에 진정을 하면 좀 더 투명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런 갈등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검찰


대검찰청은 이날 오전 검경 수사권 조정안 대응부서인 형사정책단을 중심으로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경찰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수사실무 과정에서 대통령령에 맞게 수사지휘 방식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주장을 반박해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실제 수사지휘 과정에서 실리를 챙기겠다는 취지다.

경찰이 진정사건에 대한 내사지휘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선 “개정된 형소법과 대통령령에 따라 수사지휘를 하되 논란이 되는 세부사안에 대해 좀 더 검토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경찰이 법령을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맞춰 해석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진정 및 탄원사건은 형식상 내사라고 해도 수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사과정의 일부”라며 “규정을 고의로 편협하게 해석하는 것은 국민 불편만 가중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수사 단서가 될 만한 진정사건의 경우 내사가 아닌 수사로 분류해 수사지휘를 하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또 법령과 실제 업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검찰사건사무규칙을 정비하고 경찰과 조율해 수사협의회를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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