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 대신 ‘눈물’로 두부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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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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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식당 운영 박동음 씨, 실직-사업 실패 딛고 재기

2일 오후 대구 북구 칠성동 한 순두부식당에서 만난 박동음 대표(46·사진). 밀려드는 배달 주문에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박 대표는 밀린 배달 때문에 곧바로 나가야 한다며 사진만 찍은 뒤 인터뷰는 전화로 하자고 했다.

7년 전만 해도 박 대표의 이런 활기찬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 돈이 없어 갓 태어난 아들도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다.

박 대표는 198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동안 대구 수성구 사월동 한 중견 섬유업체의 노조위원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1996년 공장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노조위원장 경력 탓에 동종업계의 취업도 힘들었다.

그는 부모에게 1억 원을 받아 레스토랑, 화재경보기 사업을 시작했지만 잇따라 실패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두 아들을 위해 건설현장 일용직, 환경미화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돈은 늘 모자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현장 일거리마저 사라졌다.

더는 버틸 힘이 없어 주민자치센터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북구지역자활센터(자활센터)를 소개받았다. 신체 건강한 남자가 남의 도움을 받아 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자활센터에서 일하며 정부 지원금을 받아 생활하는 조건부수급권자가 됐다.

자활센터에서 두부 만드는 것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박 대표는 그때부터 인터넷에 있는 유명 두부가게를 찾아가 맛을 보고 신문에 난 두부장인을 찾아가 비법을 배웠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두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2년가량 기술을 익힌 박 대표는 자활센터와 힘을 합쳐 2007년 12월 대구 북구 대현동 동대구 시장 안에 두부공장을 열었다. 좋은 재료로 두부를 만든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2008년 8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다음해부터는 1억4000만 원 대로 늘었다. 지난해 6월에는 순두부식당도 시작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청년실업자 등 6명을 채용했다. 3년 전부터는 ‘생명의 전화’에 매달 후원금도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31일까지 판매금액의 30%는 홀몸 노인 돕기에 기부할 계획이다.

대구=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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