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원, 해고자 블랙리스트 배포 취업 방해… 2000만원씩 국가배상 판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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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와 경찰 등 국가기관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동일방직 노조원의 재취업을 봉쇄한 것은 위법하므로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동일방직 노동조합은 1972년 국내 첫 여성 노동지부장을 당선시키는 등 국내 노동운동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으나 노동운동 탄압 사례로 거론되는 ‘알몸시위 진압’(1976년)과 ‘똥물테러 사건’(1979년)을 겪으며 노조원 124명이 대량 해고됐다.

○ 블랙리스트로 재취업 방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박대준)는 12일 강모 씨 등 17명이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와 치안본부(현 경찰청) 등이 동일방직 노조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해고자 명단을 만들고 배포해 재취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한 만큼 1인당 5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낸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는 1인당 2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일선 재판부가 ‘부당해고’ 사건에서 통상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위자료 최대 액수가 2000만 원임을 감안할 때 이번 판결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따른 피해 회복에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재판부는 “중앙정보부와 치안본부 등이 동일방직 노사분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복직이 결정돼 있던 원고들을 1978년 4월 1일 해고했다”며 “국가가 해고 노동자 이름을 담은 블랙리스트를 작성·배포·관리하는 방법으로 재취업을 어렵게 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해 원고들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하고 재취업을 방해하였으므로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궁핍,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기간(약 9년)을 포함하면 위자료는 2000만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확인

1970∼80년대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를 포함해 다른 회사 해고 노동자들은 번번이 취업을 거절당했다. 1987년 8월 인천 경동산업 농성 과정에서 블랙리스트가 실체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누가 왜 리스트를 만들었는지 규명되지 못했다.

사건 실체는 발생 20여 년이 지난 지난해 6월에야 비로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청계피복노조 등에 대한 노동기본권 인권침해 사건’ 결정문에서 드러났다. 이 결정문에 따르면 △1984년 작성된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문서의 사업체 관리자 친목단체가 만든 1060명의 블랙리스트 △동일방직 해고자 124명, 서통 청계피복 태창 메리야스 등 민주노조활동가 925명, 위장취업자 299명, 직종별 노동자 253명 등 1662명의 명단(경동산업 블랙리스트)이 등급별로 분류돼 관리돼 왔다. 1991년 부산 신발 업체에서는 학생과 노동자 등 8000여 명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발견됐다.

○ 최종 배상액과 향후 소송도 관심

이번 판결로 향후 다른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법원이 받아들일 배상액 규모나 크기가 얼마일지, 또 확정 판결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밝혀진 피해자들만 수백 명을 넘는다. 특히 올 6월 원풍모방노동조합 사건 피해자들이 낸 국가배상 소송에서 1인당 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과 비교하면 배상액이 갑절로 늘어났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46부(부장판사 강성국)는 원풍모방노동조합 지부장 방모 씨(66)등 40명이 낸 국가배상소송에서 “방 씨 등 8명에게 각각 1000만 원, 나머지에게는 750만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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