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보석 조건부 구속영장제 도입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7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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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보석(保釋) 조건부 구속영장제도'를 도입하는 등 기존의 형사사법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보석조건을 미리 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현재 영국 미국 등의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양 대법원장은 27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실적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이 수사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영미권에서는 보석기준을 미리 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다"며 "구속 효과를 얻으면서 피의자의 실질적인 자유권은 제약하지 않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구속 재판은 법에 명문화돼 법원이 따라야 하지만 (수사 현실을 감안해) 구속영장 제도는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11월 20일 임기가 끝나는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인선과 관련해 "대법관의 인적 구성 측면에서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전제한 뒤 "다만 연간 3만6000건 가량의 상고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법적 경험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한데 다양성을 만족시킬 만큼 저변이 넓지 않은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기존의 틀대로 법관 중심으로 대법관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대법원의 업무부담을 줄이는 방법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상고허가제(대법원이 상고 여부를 사전에 허가하는 제도) 도입이 옳다고 보지만 3심까지 재판을 받으려는 욕구를 외면할 수 없어 더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는 "영미권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배심제를 통해 국민이 사법절차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며 "형사공판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을 적극적으로 더 늘리겠지만 민사재판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비용과 처리 기간 문제로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자신의 이념 정체성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이 쪽 저 쪽으로 줄을 세우지 말아 달라"며 "사회적으로 보수,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여성 호주제나 여성 종중(宗中) 자격 인정 같은 것을 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불합리하면 따르지 않아 '반골(反骨)'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법은 철저히 지키고 수호해 왔고 재판도 이런 기조로 해 왔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200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남성만 종중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바꿀 당시 김영란 전 대법관 등과 함께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지법 북부지원장으로 일하던 2001년에는 남성 우위의 호주제에 대해 최초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간담회에 앞서 양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지금까지 법관인사제도는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최선의 제도였지만 이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관상을 생각해야 한다"며 "법관의 전폭적인 신뢰 확보를 위해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국민과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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