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통제 ‘세계자연유산 제주 용천동굴’ 직접 들어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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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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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년전 용암이 뚫은 3.6km 터널… 통일신라시대 유물 - 흔적 고스란히

25일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전용문 연구원이 석회질 결정이 맺힌 종유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제주=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25일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전용문 연구원이 석회질 결정이 맺힌 종유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제주=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동굴에서 발견된 멧돼지 뼈. 이 멧돼지는 통일신라시대 때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제공
동굴에서 발견된 멧돼지 뼈. 이 멧돼지는 통일신라시대 때 제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제공
25일 오전 제주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의 한 맨홀. 입구를 열자 마치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지하 은신처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스럽게 계단으로 10m가량 내려가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엄습했다. 두려운 마음에 조심스레 손전등을 켜자 눈앞에 찬란한 황금색 동굴이 나타났다.

기자는 이날 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 전용문 연구원(38·지질학 박사)과 함께 제주 용천동굴(龍泉洞窟·천연기념물 466호)을 1시간가량 탐사했다. 용암이 땅속을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터널 형태의 이 동굴은 내부 현무암 분석 결과 최소 2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용천동굴은 2005년 5월 전봇대를 박던 한국전력 직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고 2007년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이후 학술적 탐사 이외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 세계 유일의 황금색 용암동굴


용천동굴은 총 길이 3.6km, 최대 폭 14m, 높이 20m에 달하는 대형동굴이다. 한동안 걸어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수차례 넘어질 뻔한 울퉁불퉁한 바닥은 흐르던 용암이 식는 도중 또 다른 용암이 흘러오면서 굳어진 주름이다.

조심스레 15분 정도 걸어가자 폭 7m, 높이 20m의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벽면은 마치 솔로몬의 궁전에 온 듯 온통 황금색과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전 연구원은 “긴 세월 동안 해안가의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모래가 바람에 날려 용암동굴 위쪽 지상에 뿌려졌다”며 “이후 모래가 비에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어 동굴 벽에 흘러내리고 동굴 속 박테리아가 붙으면서 황금 색깔과 동굴산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70m가량 더 들어가자 다시 천장이 낮아졌다. 엉금엉금 기어가며 천장을 손전등으로 비춰보자 노랗고 하얀색의 긴 관 수천 개가 마치 ‘샹들리에’처럼 매달려 있었다. 동굴 위 지상에 심어진 나무뿌리 위에 석회질 결정이 맺힌 종유관이다.

○ 동굴에 남은 신라인의 숨결

벽면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과 함께 조개와 전복껍데기도 붙어있었다. 전 연구원은 “통일신라시대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드나들다 벽을 횃불로 찔러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바닥에는 사용하다 남은 숯이 석회에 묻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용천동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토기 22점과 철기류 4점이 발견됐다. 8세기 전후 제주도에 살던 사람들이 이 동굴에 출입했다는 증거다.

용천동굴은 통일신라시대에만 우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이후 인위적으로 폐쇄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통일신라시대 토기 외에 다른 시대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1653∼1733)이 작성한 ‘탐라순력도’에도 용천동굴의 존재가 나타나 있지 않다.

용천동굴 끝에는 수심 13m, 폭 20m에 달하는 호수가 있다. 이곳에서는 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 뼈 등 각종 유물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 유물이 제주 지역에 내려오는 전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녕굴(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 용암동굴)에 큰 뱀이 살았다는 전설로 뱀이 자주 사람을 잡아먹자 주민들이 위험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처녀를 바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용천동굴과 김녕굴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 호수에서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 연구원은 “용천동굴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진귀하고 조사 가치가 높은 동굴”이라며 “보전을 위해 앞으로도 일반 공개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제주=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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