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 앞세운 재개발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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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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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3구역, 시행사 - 상가 세입자 넉달째 대치… 갈등비용 눈덩이

도시재개발 업자와 철거민 사이의 보상 협상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 양쪽이 공멸하는 ‘치킨 게임’으로 바뀐다. 시공업체는 공사비가 갈수록 불어나고 철거민 역시 장사를 못하거나 제때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8일로 공사착공 예정일을 넘긴 지 100일이 되는 서울 중구 명동3구역 재개발 협상이 바로 그런 사례다.

○ “더 내놔”↔“못 준다” 100일째 줄다리기

명동3구역 재개발은 도심을 쾌적하게 바꾸자는 취지의 사업으로 서울 중구청이 지난해 4월 시행인가를 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4월 철거를 끝내고 5월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구역 내에서 장사를 해온 상가 세입자들이 이전을 거부한 채 철거에 반발하면서 착공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착공이 미뤄지면서 재개발사업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개발(명동개발)은 이자만 한 달에 11억4000만 원씩 모두 34억2000만 원을 물었다. 사업 장래성을 보고 돈을 빌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형태의 고금리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공사인 대우건설도 준비한 공사 장비와 인력을 놀리고 있다. 일을 못한 100일간 하루에 1000만 원씩 약 10억 원의 손해가 났다. 건물 철거를 맡은 창신개발은 제대로 철거를 하지도 못하고 용역직원 인건비로 약 1억2000만 원을 썼다. 공사 지연에 따라 개발 사업자 측은 45억 원을 날린 셈이다.

상가 세입자들도 손해는 마찬가지다. 명동 3구역 내에 있는 점포 102곳 중 아직 가게를 빼지 않고 버티는 점포 11곳의 평균 월수입은 700만∼1300만 원 선. 가게 문을 닫은 것은 아니지만 흉물스러운 주변 환경에 손님도 거의 없어 사실상 파리를 날리고 있다. 가게 한 곳당 월평균 수입을 1000만 원으로 잡을 경우 최근 석 달간 3억3000만 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 왜 ‘제로섬 게임’ 벌이나


개발 사업자와 세입자 상인 모두 손해지만 해법을 못 찾는 이유는 뭘까. 재개발 시행사는 법에 규정된 액수보다 더 많이 보상할 의향이 있지만 세입자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엔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재개발 지역 상가 세입자는 4개월간 영업 손실액과 이전비용을 보상받는다. 시행사인 명동개발은 구청이 정한 감정평가기관 두 곳에서 산정한 보상액보다 20∼40% 많은 400만∼1600만 원을 보상했다.

명동개발 관계자는 “남은 세입자 대부분은 상가 주인과 임대차 계약이 끝나 가게에 남아 있을 권리가 없다”며 “다른 곳에서 지금 수준의 가게를 열 정도의 보상금을 요구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현재의 상권을 만들기 위해 권리금 등 5000만∼1억 원을 투자했는데 10∼20%밖에 안 되는 보상금만 받고 쫓겨나면 살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입주 당시 투자했던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돌려받을 길이 없다.

배재훈 명동3구역 상가대책위원장은 “20년 가까이 명동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갑자기 1000만 원 남짓 주면서 다른 데로 가라고 하면 어디서 장사를 하느냐”며 “주거 세입자들 수준으로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한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지역의 주거 세입자는 휴업 보상비만 받는 상가 세입자와 달리, 개발 이후 재정착을 위해 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을 얻고 개발 기간에는 임시수용시설에서 지낼 수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강한 인턴기자 부산대 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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