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지혜]<3·끝>英-美의 ‘거중조정인’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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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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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당사자가 대안 내면 전문가는 합리적 중재

북해 인근 해안의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놓고 갈등을 벌인 영국의 환경단체들과 어민, 조선소 관계자들이 영국의 갈등 해결 시민단체 ‘이카루스’의 주관으로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최근 각종 지역 개발사업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전문가를 통한 ‘거중조정’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카루스 제공
북해 인근 해안의 해양보호구역 지정을 놓고 갈등을 벌인 영국의 환경단체들과 어민, 조선소 관계자들이 영국의 갈등 해결 시민단체 ‘이카루스’의 주관으로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최근 각종 지역 개발사업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전문가를 통한 ‘거중조정’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카루스 제공
2009년 영국 정부는 유전 개발과 해양폐기물, 물고기 남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북해(北海)를 보호하기 위한 ‘해양 및 해안 이용에 관한 법안’을 만들고 북해와 접한 해안 지역 일부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환경단체들은 환영했지만 북해 인근에 밀집한 조선소와 어민들은 일제히 분노를 터뜨렸다. 갈등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영국 정부는 환경단체와 어민, 조선소 등 이해당사자들을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참여시켰다. 영국의 시민단체 ‘이카루스’는 참여 단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단체는 해양보호구역 지정에는 일절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해양보호구역을 넓히려는 환경단체,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어민, 조선소 간의 갈등 해결을 돕는 ‘전문 거중조정인(居中調停人·mediator)’이기 때문이다. 이카루스는 먼저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대한 정부의 계획을 환경단체와 어민, 조선소에 전달한 뒤 이들이 각각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간극을 좁혀갔다. 결국 해양보호구역 지정 사업은 큰 갈등 없이 진행돼 2012년 마무리될 것이다.

한국에서 공공갈등은 대부분 소송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갈등 예방을 중시하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소송 외에 공공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제3자인 갈등 관리 전문가를 활용하는 ‘거중조정인’ 제도는 중립을 유지한 채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해결책을 끌어내도록 도와 갈등 해결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 갈등 해결 나서는 영국 시민단체

거중조정은 제3자가 직접 대안을 제시하는 ‘중재’나 ‘조정’과는 달리 전문가가 개입해 갈등 당사자들이 대화와 토론으로 직접 대안을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국에서는 이카루스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주로 지역 개발 사업과 관련한 갈등을 해결하는 거중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갈등에 휘말린 지역 주민들이나 정부의 요청을 받아 갈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처지를 분석해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1999년 설립된 이카루스가 지금까지 개입한 지역 개발과 환경 사업은 모두 40여 건. 처음에는 이카루스가 직접 갈등현장을 찾아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지방정부가 먼저 개입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갈등 관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스티브 스미스 이카루스 대표는 “외부 전문가를 통한 갈등 해결이 정책의 추진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 갈등 관리 의무화한 미국

미국은 갈등이 소송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90년 ‘행정분쟁 해결법’을 제정했다. 각 기관의 고위관료를 분쟁 해결 전문가로 임명해 소송 대신 거중조정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법무부의 ‘분쟁해결실’, 농림부 및 환경보호청의 갈등 관리 기구인 ‘갈등 예방 및 해결센터’, 환경분쟁 예방기구인 ‘미국환경분쟁해결원’, 노사갈등 해결 기구인 ‘연방조정알선청’, ‘지역사회 갈등해결센터’ 등 상설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연방조정알선청은 매년 6000여 건의 임금단체협상 갈등을 거중조정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노사가 최종합의에 이르는 비율은 전체의 75%에 이를 정도다. 미국에서는 거중조정이 아예 전문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갈등 해결 전문가로 일하거나 변호사처럼 단독으로 갈등 해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전문가만 3000명이 넘는다.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는 “국내에도 노동위원회 등 갈등조정기구가 있지만 제3자가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방식으로는 갈등 해결이 어렵다”며 “갈등 해결 효과가 높은 ‘거중조정’ 방식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맨체스터=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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