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상속’ 위해 유령회사-위장이혼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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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기업주 등 204명 적발 4595억 추징… ‘세금없는 富의 대물림’ 집중조사

서울에 있는 중견 제조업체 사주(社主) A 씨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인 소유 주식의 명의를 임원 이름으로 바꾼 뒤 이 주식의 일부를 자녀가 대주주인 회사에 수백억 원 싼값에 넘겼다. 차액만큼 자녀에게 부당이득을 넘겨준 것이다. 또 임원 이름으로 돼 있는 주식에 배당금이 생기자 이 돈으로 무기명 채권을 구입했다가 되파는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한 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자신의 회사 주식을 추가로 사들였다. 자녀에게 넘기려는 의도였다. 국세청은 2500억 원을 탈루한 A 씨에게 970억 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은 부당증여 등 편법으로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준 기업체 사주와 고액자산가 등 204명을 적발하고, 4595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고 12일 밝혔다. 적발된 업체는 대부분 매출액이 1000억∼5000억 원에 이르는 중견기업들이다. 국세청은 올 하반기에 추진할 세무조사 역점과제로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 차단 △대기업에 대한 성실신고 검증 △역외탈세 근절 등을 확정했다고 덧붙였다.

○ 첨단 범죄화하는 편법 상속


국세청의 하반기 세무조사 3대 방침은 집권 하반기를 맞은 현 정부가 최근 화두로 내세운 ‘공정사회를 위한 부의 편법상속 근절’을 실현하기 위한 국세청식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2세, 3세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편법과 불법이 횡행하고, 금융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아 점차 상속·증여세 탈루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상반기에 적발된 편법적인 세습사례를 보면 부의 편법 대물림 탈루 유형이 고도의 법률적 지식과 금융상품 정보를 바탕으로 하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횡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률가와 금융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얘기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서비스업체의 사주 B 회장은 1998년 계열사 임원 이름으로 돼 있던 주식을 본인 이름으로 바꿨다. 당시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하면 증여세가 면제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후 B 회장은 2004년 다시 임원들을 앞세워 해당 주식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아들이 성년이 된 2008년 이 주식의 실제 소유자가 아들인 것처럼 주주명부를 허위로 작성하고, 735억 원어치의 주식을 증여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주식을 아들에게 직접 물려주면 증여세가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꾸민 일이라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은 B 회장에게 증여세 620억 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경기지역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 사주 C 대표는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190억 원으로 2002년부터 최근까지 임직원 20명의 이름을 빌려 양도성예금증서(CD)와 국공채 펀드 등을 사들인 후 이를 30대 중반인 자녀에게 변칙 상속하려다 적발됐다. 국세청은 C 대표에게 120억 원의 증여세를 추징했다.

해외에 세운 페이퍼컴퍼니와 서류상 이혼을 통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탈루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공인회계사 D 씨는 2007∼2008년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50억 원을 증여하고도 아들 명의의 페이퍼컴퍼니에 투자한 것처럼 송금했다. 또 30년 이상 같이 살던 아내에게는 이혼 시 재산분할이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상 이혼하고 예금 80억 원을 넘겨줬다. D 씨는 지난해 숨졌고 아들은 페이퍼컴퍼니가 적자를 낸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주식가치를 ‘0’원으로 신고했다. 국세청은 D 씨 아들과 부인을 상대로 사전증여에 따른 상속세 등 140억 원을 추징하고 고발조치했다. 충남에 본사를 둔 기계부품 제조업체의 사주 E 씨는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고철을 판매한 돈과 본인의 부동산 매각자금 20억 원을 더해 모두 40억 원을 자녀 3명에게 줬다가 적발됐다. 자녀들은 이 돈을 계열사 지분 취득용 종잣돈으로 썼다. 국세청은 법인세, 증여세 등으로 26억 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 대기업 사주 일가에 대해 조사 강화


국세청은 올 하반기에 대기업의 성실신고에 대해 다각적인 세무 검증을 벌이기로 했다. 세무검증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및 하도급업체를 통한 탈세와 사주 일가의 기업자금 불법유출 혐의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또 국세청은 기업이나 고액자산가들이 해외 조세피난처로 자금을 유출하는 역외탈세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단속 활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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