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권에 분노” 1인 시위 나선 70대 퇴임교사 김광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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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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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지도 못할 정도로 교사들 氣 죽여서야…”

“사회가 학생 지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교사들의 기를 죽여 놓은 것을 보고 분통이 터져 그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한 70대 퇴임 교사가 잘못된 교권 붕괴의 교육현장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1인 시위에 나섰다.

1999년 충남 천안북일고에서 정년퇴직한 김광호 씨(76)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녹색 칠판 시대에 판서를 위해 백묵을 들었던 그의 손에는 ‘선생님이 신이 나야 학생들이 신이 난다’는 내용의 피켓이 들려 있었다.

“교권이 붕괴됐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를 한 학생에게 5초간 엎드려뻗쳐를 시켰다고 경기도교육청이 교사를 징계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정말 이렇게까지 교권이 무너졌나 하는 생각에 울분이 터졌어요.”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단체 활동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평범한 교사였지만 이 소식을 듣고 더는 참을 수 없어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왔다. 이미 교단에서 은퇴한 그로서는 이 방법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29일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충남 천안에서 오전 8시경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피켓을 들고 정부중앙청사와 동화면세점 주변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 관료와 시민 모두에게 교권 붕괴의 암울함을 알리기 위해서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교권 회복을 위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광호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교권 회복을 위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광호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그가 나중에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꼼꼼히 메모하고 있는 1인 시위에 대한 반응은 가지가지다.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기도 하고 피켓의 문구를 더 강력한 것으로 바꾸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키득키득 웃는 학생들도 있지만 노구에 1인 시위를 벌이는 그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김 씨는 “시위 도중에 찾아온 한 30대 고등학교 생물 교사가 ‘최근 전셋집을 구하러 갔는데 집주인이 직업을 묻기에 회사원이라고 했다’고 하더라”라며 “왜 그랬느냐고 묻자 ‘교사라고 말하려다 바닥에 떨어진 교권이 부끄러워서 그랬다’는 기막힌 대답을 들었다”며 혀를 찼다.

그는 “내가 현직일 때는 ‘직업이 뭐냐’는 질문이 기다려질 정도로 교사는 자랑스러운 직업이었다”라며 “앞으로 좋아질 거라고 위로는 해줬지만 어떻게 교사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떨어졌는지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연세대 상대를 졸업한 그는 1962년 경복고를 시작으로 선린상고, 대전상고, 천안북일고를 거치면서 37년간 상업을 가르쳤다. 당시엔 스르르 구름같이 나타나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잘 잡아내 ‘손오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혈기왕성하던 20대에는 잘못한 학생들의 뺨도 때리고 기합도 줬지만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무리하지 않고도 교육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제자인 대전방송 김건교 보도국장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연재소설처럼 감칠맛 나게 들려준 삼국지는 수업의 집중도를 높여주고 인생의 살과 뼈가 됐다”고 회상했다.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 지금 학생들과 달리 그의 1인 시위에는 이제는 백발에 주름이 깊어진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연이어 찾아오고 있다. 제자들은 선생님의 교단 수호 투쟁에 동감하면서도 “제발 건강을 생각해 무리하지는 마시라”라고 걱정을 하곤 한다. 이런 와중에도 김 씨는 교육계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았다.

“얼마 전 교사인 제자가 가르치는 교실을 찾았더니 자는 학생 3명을 안 깨우고 있었죠. ‘그대로 두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3명 때문에 30명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제자가 되물었어요.”

김 씨는 “이런 제자에게 ‘초중고 교육은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교육을 하는 현장이며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환경 탓으로 돌려 교사의 책무를 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따끔하게 야단쳤다”며 “사회도 교사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아내가 다 늙어서 주책이라고 하다가도 더 이상 교단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내 뜻에 이제는 공감을 한 상태”라며 “미약하지만 교육계 선배로서 마지막 할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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