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압구정동 토박이 출신 60여명 훈훈한 경로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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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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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배꽃 날리던 압구정동… 아파트숲 됐어도 마음의 고향”

압구정동 출신들이 모여 만든 ‘압구정향우회’ 회원들이 몽골 문화공연 관람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위). 1970년대 초반 한창 개발이 이뤄질 때만 해도 논밭이 더 많았던 압구정동(아래 왼쪽). 압구정향우회 제공
압구정동 출신들이 모여 만든 ‘압구정향우회’ 회원들이 몽골 문화공연 관람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위). 1970년대 초반 한창 개발이 이뤄질 때만 해도 논밭이 더 많았던 압구정동(아래 왼쪽). 압구정향우회 제공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대표적인 부촌(富村) 이미지다. 하지만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이곳 토박이에게 압구정동은 아직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김장을 담그던 곳이라는 기억이 더 생생하다.

압구정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 60여 명이 15일 한곳에 모였다. 압구정향우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 이들이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몽골문화촌에 모여 경로잔치를 열었다. 몽골문화촌에서 몽골리안 마상쇼를 관람하고 함께 모여 국수 잔치를 여는 등 이들에게 이날 하루는 오랜만에 고향의 정을 다시금 느끼게 한 자리였다.

○ 기억 속 압구정동은 ‘과수원 마을’


아직 이들의 기억에 새겨진 압구정동은 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에 마이크로버스가 1시간에 1대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 촌동네로 남아 있다. 봄만 되면 마을 어귀에서부터 향긋한 배꽃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압구정향우회 회원 총 200여 명 중 반 가까이는 1960, 70년대 개발이 한창 이뤄질 당시 경기 남양주 화성 구리 김포시 등 인근으로 이사를 가 개발 이익을 상대적으로 얻지 못했다. 하지만 결코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다. 원래 압구정동은 과수원 마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가업으로 이어오던 과수원 일을 계속 하기 위해 이사를 갔던 건 이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2009년 농촌진흥청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명인’으로 선정된 이윤현 씨(65) 역시 그중 하나. 이 씨는 3대째 압구정동에서 배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1972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기 화성시로 농장을 옮겼다. 이 씨는 “가끔 주변에서 이사를 가지 않고 계속 거기 살았다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았겠냐고 묻지만 대신 맘 놓고 배를 키울 수 있는 농장을 갖게 된 게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향우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박희철 몽골장학회 회장 역시 유년시절을 압구정동에서 보내다 경기 남양주시로 1973년 이사를 갔다. 워낙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당시 남양주시에 방앗간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미련 없이 압구정동을 떠났다. 그는 “물론 압구정동이 엄청난 부촌이 됐지만 당시 방앗간을 얻어 삶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쳐갈 수 있었다”며 “사람들은 압구정동을 부의 상징으로 떠올리지만 이곳은 나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라고 떠올렸다.

○ 장학회 만들어 ‘정 나누기’ 이어가


회원들은 ‘압구정 장학회’를 꾸려 압구정동 토박이들의 정을 나눠가고 있다. 이윤현 장학회장은 “2008년부터 매년 2,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 100여만 원을 전달하고 있다”며 “비록 지금은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개발 전 옹기종기 모여 살며 정을 나눴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매년 체육대회를 열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함께 모이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196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압구정동 개발이 시작되며 비록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샛강에서 함께 썰매를 타는 기억은 이제 추억 한쪽에 묻어 두게 됐지만 아직까지 이들은 ‘압구정’이라는 단어에서 정겹고 따뜻한 고향을 떠올린다. 정정남 압구정 향우회장(67)은 “비록 지금은 압구정동에 아파트촌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이렇게 가끔 한자리에 모여 고향의 정을 나누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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