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KAIST 교수 논문 국제학술지 표지논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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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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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의 바위 밀착’ 모방
초고강도 탄소섬유 개발… “생전 통보받고 기뻐했는데…”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KAIST P 교수의 유고(遺稿) 논문이 유명 학술지의 표지논문(사진)으로 게재됐다. 이 논문은 3월 초 게재 승인이 떨어져 P 교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P 교수가 KAIST 신소재공학과 홍순형 교수, 화학과 이해신 교수와 함께 연구한 것은 홍합의 생체구조를 모방한 초고강도 전도성 섬유 제조기술이다. 이 내용은 재료분야 유명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3일자 표지논문으로 소개됐다. P 교수는 이 논문의 연구 책임자로 참여했다.

홍합은 실 같은 조직을 뻗어 바위에 달라붙는다. 콜라겐 섬유와 카테콜아민이라는 성분이 그물처럼 얽혀 있어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접착력이 강하다. 연구진은 이를 모방해 콜라겐 섬유 대신 탄소나노튜브를, 카테콜아민 대신 고분자 접착제를 써 새로운 탄소나노튜브 섬유를 개발했다.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는 길이가 수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해 상용화가 어렵지만 이번 연구로 수 m로 만들 수 있게 됐다”며 “P 교수가 논문 게재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고 말했다.

P 교수는 올해 1월 KAIST로부터 ‘올해의 KAIST인상’을, 2009년에는 미국 생체재료학회로부터 ‘클렘슨상’ 등을 수상해 바이오 재료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으로 평가받았지만 연구비 유용 혐의를 받게 되자 지난달 10일 대전 자택에서 자살했다.

한편 P 교수의 부인인 S 씨는 11일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 ‘총장님을 비롯한 모든 KAIST인들께’라는 A4용지 두 장 분량의 글에서 “학자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목숨과 같다. 남편이 모욕감에 힘들어했다”며 비통함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암묵적으로 교수와 학생들의 동의 아래 시행돼 온 랩(Lab)비 문제는 제도적인 것이었다”며 학교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또 “KAIST로부터 남편의 일과 관련해 어떤 경위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학생들과 함께하며 학교에서 인정을 받았을 때 가장 빛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KAIST를 원망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고 끝을 맺었다.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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