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과목 지정된 한국사 교과서 검정 과정 허점투성이… 교과서 13종을 한달만에 ‘벼락치기 심사’

  • Array
  • 입력 2011년 4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3, 4주 심사-5일 합숙… “보고서 쓰기도 벅찬 기간”
1권 오류 지적만 200건 넘기도… 내용조율 불가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편향성 논란을 빚는 가운데 검정 및 검수 과정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역사라는 과목의 특성상 내용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특히 강조해야 하는데도 조율되지 않은 의견이 교과서에 그대로 실린 탓이다. 검정과 검수를 민간에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정부 책임도 크다.

○ 시간 쫓겨 검토 미진


올해 고교에 보급된 한국사 교과서는 2009년 11월부터 7개월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심사를 받았다. 절차는 기초조사와 본심사로 진행됐다.

기초조사에서는 교사와 교수로 구성된 연구위원 9명이 13가지 교과서의 오류를 중점적으로 점검했다. 기준과 방법에 대해 연수를 받은 뒤 각자 한 달 동안 조사하고 합숙을 통해 보고서를 완성하는 식이다.

한 연구위원은 “검정 대상이 13종이다. 워낙 분량이 많아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보고서를 완성하는 데 급급했다”고 말했다. 국정 교과서 시절 교수 교사 장학관 등 전문가 60여 명이 1권의 내용을 점검한 데 비하면 상대적으로 허술한 셈이다.

합격 여부를 가리는 본심사도 마찬가지. 검정위원 11명이 교과서 13종을 6종으로 줄였는데 시간이 짧다는 지적이 나왔다.

본심사에 참여한 검정위원은 “연수를 받고 3, 4주 동안 각자 심사하고 5일간 합숙 심사에 참여한다. 의견이 갈려 격하게 다투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교과서 내용을 다 검토하고 조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단순 오탈자를 제외한 내용상의 오류 지적만 교과서마다 많게는 200건이 넘다 보니 다른 내용은 조율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정확성 및 공정성과 관련해 ‘집필자 개인의 편견 없이, 특정 학설이나 이론에 편향되지 않게 역사학계의 통설을 반영해 공정하게 표현 기술 구성했는가’를 묻는 기준이 있지만 배점이 100점 중 19점으로 낮아서 합격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점도 문제.

○ 수정·보완 강제성 없어

합격한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다시 감수했다. 과목의 특성상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단 2주 동안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한 내용을 모두 걸러내기는 역부족이었다.

6종의 교과서에 모두 실린 동학군 관련 내용이 대표적. 폐정개혁안 12개조 인용이 적절한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근거가 역사소설 ‘동학사’라는 점이 문제였다.

감수에 참여했던 전문가는 “소설은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는 주장과 저자가 동학군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라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지만, 역사소설이라는 출처를 표기하는 선에서 매듭지었다”고 설명했다.

평가원과 국사편찬위의 수정 또는 보완 권고를 출판사가 모두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삼화출판사는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 지도자, 몽양 여운형’ 부분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여운형, 건국을 준비하다’로 고치는 데 그쳤다. 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소개를 삭제하라는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과서 검정 강화도 중요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만들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주영 건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역사 교과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정한 교육과정과 이를 구체화한 집필기준을 토대로 만든다”며 “여기에 우리 역사를 부정하거나 나쁘게 평가하는 사관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