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내 아이 행복할까?]부모·자녀 ‘행복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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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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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엄마가 뭘 알아요? 전 지금 힘든데…”


《과학영재들이 모인다는 KAIST에서 최근 학생 4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학생들이었지만 속으론 학업과 성적에 대한 극심한 고통을 느껴왔던 것이다. 이 사건은 중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가슴 한복판에 짙은 앙금이 되어 남았다. 학부모들이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 지금 행복할까….’ 전교 1등 자녀를 둔 부모는 행복하다. 하지만 그 자녀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아이의 내면에 켜켜이 쌓여온 불만과 불행의 퇴적물이 어느 날 핵폭발하는 순간을 부모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오늘 ‘신나는 공부’는 내 아이의 행복을 다룬다. C1면에선 행복을 둘러싼 부모와 자녀의 숙명적인 시각차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C2면에는 국내 최고 교육전문가인 서울대 문용린 교수가 ‘불행한 최상위권 자녀를 위한 학부모의 감정 코칭법’을 알려준다. 이어 C3면에는 화제의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이자 실제로 대입 수험생 자녀를 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고민에 빠진 남녀 고교생을 만나 따스한 조언을 들려준다.》
“좋아하는 음식은 뭐든 해줘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강요하기보단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100% 밀어줍니다.” 이런 학부모, 많다. 스스로 ‘쿨’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보통의 학부모들과 다르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렇게 하소연한다. “아빠, 엄마가 제 사정을 어떻게 알아요? 이야기해봤자 말이 안 통해요.” 아이의 행복? 학부모인 당신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행복에 대한 학부모와 자녀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들여다보자.


“무조건 딸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줘요”


▶ 지난해 말, 고교 선택을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 김모 양(16)이 어머니 A 씨(46)를 찾았다. 김 양은 “영상이나 미디어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꼭 특성화고에 가고 싶다”고 했다. A 씨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김 양이 스쳐지나가는 모습이라도 영상, 미디어 분야에 관심을 보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계고가 좋지 않겠냐고 제안해봤지만, 김 양의 의지는 강했다. 결국 김 양은 특성화고의 미디어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A 씨는 “자녀의 선택을 100% 존중했다”면서 “디지털카메라를 사주며 응원해주고 아이에게 진학 계획을 틈틈이 물어본다”며 웃었다.

A 씨는 행복하다. 김 양은 행복할까.


▶ 올해 고1이 된 김 양에게 학교는 지옥이다. “일반계고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싫어 이 학교에 왔다”고 자랑스레 떠벌리는 ‘왕재수’ 친구들이 적잖다. 이 왕재수들은 수업시간에는 산만하게 굴지만, 촬영에 필요한 값비싼 전자기기는 척척 들고 다닌다.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때부터 미디어 분야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왔다. 전자기기도 어찌나 잘 다루는지….

어설픈 건 김 양뿐이다. 학과 수업이 있을 때는 종일 서서 작업해야 한다. 처음 배우다 보니 마냥 어렵고 힘들다. 교과 공부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학생 수가 적으니 성적 경쟁도 만만찮다. 아직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김 양은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해 들어온 학교인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 힘들다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다”고 울먹인다.


“똑똑한 우리 딸, 교우관계도 최고예요!”


▶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이모 양(18)에게는 단짝 친구가 여럿 있다. 이 양의 어머니 B 씨(48·서울 강남구)는 성적도 좋고 교우관계도 좋은 딸이 마냥 자랑스럽다. 친구들과 등하교하며 깔깔대는 딸의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은지…. 공부도 열심이다. 집중하고 싶다고 해서 독서실도 끊어줬다. B 씨는 “의지할 친구들이 있으니 아이의 수험생활이 편안해 보인다”면서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간식도 챙겨준다”며 웃음을 지었다. B 씨는 행복하다. 이 양은 행복할까.


▶ 4월 모의고사를 본 이 양은 눈앞이 캄캄했다. 각 영역에서 5∼10점씩 뚝뚝 떨어진 성적 때문이다. 친구들이 “그래도 넌 공부를 잘한다” “성적이 금방 오를 거다”며 위로해 줬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율학습시간에는 집중이 안 됐다.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를 보니 ‘내가 곧 (저 친구에게) 역전당하겠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이 양은 “아까 잠깐 조느라 필기를 못했는데 보여줄 수 있냐”고 묻는 친구에게 “나도 필기를 못했다”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마음이 불안해 독서실을 끊었다. 하지만 갑자기 친구에게 속 좁게 굴었던 게 생각났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뚝 떨어진 성적도 고민이고 친구관계도 걱정이다. 대학은 갈 수 있을지….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양은 “요새 내가 바보 같아서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많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반장된 아들, 깜짝 파티로 축하해줬죠”


▶ 3월 초, C 씨(서울 도봉구)는 같은 반 친한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 김모 군(18)이 오늘 학교에서 반장으로 선출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학부모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다른 엄마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C 씨는 아들이 귀가하기도 전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뿐인가. 학부모 모임에서 얻은 학원, 과외강사, 공부법 관련 정보는 아들의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이날 오후 C 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사놓고 아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김 군이 집에 들어오자 C 씨는 반색을 하며 “오늘 반장됐다며? 미리 들었다. 축하한다!”며 뜨겁게 격려해줬다. C 씨는 행복하다. 김 군은 행복할까.


▶ 학급 반장이 된 김 군. 반장으로 당선된 날 집에 오니 어머니가 당선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놀라웠다. ‘엄마가 어떻게 알았지?’란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쳤다. 김 군은 부모의 기대와 관심이 너무나 부담스럽다. 이제는 어머니의 모든 말이 잔소리로 들린다.

김 군은 “요새 무슨 학원이 좋다더라” “너도 시간을 재며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니?” 같은 어머니의 조언이 진절머리 난다. 김 군은 “나는 혼자 차분히 공부하는 게 좋은데 어머니는 자꾸 다른 공부법을 강요한다”면서 “어머니의 잔소리에 못 이겨 원치 않는 수학 학원에 다녔다가 성적이 더 떨어진 적도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유명진 기자 ymj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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