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존을 향해/5부]<4>공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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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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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란… 착한 사람의 숨은 선행? 보통 사람의 나눔 산업!

■ NHN 설립 후 나눔운동 나선 권혁일 해피빈 대표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해피빈 본사에서 만난 권혁일 대표. 그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남=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해피빈 본사에서 만난 권혁일 대표. 그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남=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권혁일 해피빈 대표(43)에게 기부는 산업과 동의어다.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기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수치부터 꺼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9년 기부액 신고 금액은 약 9조45000억 원이었습니다. 웬만한 산업과 맞먹는 규모죠. 하지만 누구도 기부를 산업이라 부르지 않아요. 아직도 기부는 몰래,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안타까워요.” 권 대표의 기부는 거액을 쾌척하거나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그의 기부 목표는 사회구조의 비어있는 부분을 지원해 가치를 높이는 것. 이를 위해 권 대표는 지난해부터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보호시설에 나온 청소년들이 회사를 차려 자립할 수 있는 ‘연금술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기(13명)에 이어 2기(25명)들이 도시락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권 대표는 이 회사가 순익까지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돈만 기부하고 잘 써 달라고 하는 것’은 체질적으로 안 맞다”고 했다. 아이들의 MT까지 쫓아가는 것도 그의 몫이다. 잠재적 역량을 지녔지만 사회가 무관심했던 청소년을 발굴해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그에게 기부고 나눔이었다.

삼성SDS 출신인 권 대표는 삼성 사내 벤처에서 검색엔진을 개발하며 네이버(NHN)를 설립했다. 그는 이런 이력을 토대로 혁신적인 기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해피빈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어버린 셈.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네이버가 포털로 커가는 과정을 봤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무작정 새로운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자산을 의미 있게 써보고 싶었습니다.”

권 대표가 건넨 명함은 두 장이 포개져 있다. 한 면에는 이름과 연락처가, 다른 면에는 해피빈 기부 인증번호가 적혀 있다. 해피빈 홈페이지에서 이 번호를 입력해 콩을 받으면 원하는 단체나 모금함에 기부할 수 있다. 이 돈이 어디서 어떻게 쓰였는지 단체로부터 보고도 받는다.

2005년 문을 연 해피빈의 출발은 기부에 쓸 수 있는 콩(사이버 머니)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해피빈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네이버를 통해서나 우연한 계기로 콩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국내 NGO 단체에 대해 알고 관심사에 맞는 단체나 기부처를 찾게 된다. 콩은 잠재적 기부자와 NGO의 관계를 잇는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권 대표는 “NGO 단체들은 돈을 기부 받는 것 같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부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피빈은 “단순한 기부 서비스가 아닌 기부 인프라”라고 표현했다. 해피빈의 블로그인 해피로그에 소속된 NGO 단체는 현재 5100개를 넘어섰다. 콩을 보유한 누리꾼만 1250만 명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기부 활동에 대한 구체적 질문에는 대답을 꺼렸다. ‘기부자=착한 사람’이라는 고정된 틀이 부담스러워서다. “나는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착하지도 않다”는 그는 기부 문화 확산을 막는 커다란 장애물로 기부를 선한 사람이 하는 적선(積善)과 동일시하는 것을 꼽았다.

“한국인이 기부를 보는 관점은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에 머물러 있어요. 불쌍하고 마음 찡하니까 한번 도와주자. 그러고는 ‘나는 할 일을 다했어’라며 1년을 살죠. 사회봉사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고정돼 있어요. 그들을 헌신적인 사람, 나와 관계없는 착한 사람으로 치부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가둬버리죠.”

그는 “자선사업 분야를 사회의 주류가 돼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뛰어들 만한 곳으로 바꿔야 한다”며 “‘기부 생태계’를 바꾸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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