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論하자”서 “이젠 즐기자”로… 확 바뀐 대학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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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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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대 1996년 명단 2011년과 비교해보니…

《 국내 대학 사회과학 계열 동아리들이 최근 10여 년간 신입생을 받지 못해 동아리가 폐지되는 등 명맥이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1일 서울대와 고려대의 1996년 중앙동아리 명단과 15년 후인 올해 현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이 기간에 지성의 상징이던 상아탑에서 학술 연구 활동을 하는 사회과학 분과 동아리는 대부분 폐지됐거나 중앙동아리에서 밀려났으며 대신 전시창작이나 연행예술 분과 동아리가 신설되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 사회과학 동아리 몰락

1992년 서울대 “토론이 힘”
1992년 서울대 “토론이 힘”
1996년 서울대 학술사회 분과 소속 동아리 17개 중 15년 후인 올해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동아리는 고작 6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프로메테우스’와 여성문제를 연구하는 ‘한울타리’, 과학기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고민하는 ‘과학철학연구회’, 북한탐구 동아리 ‘조국사랑’, 통일 관련 학술 동아리 ‘통일문제 연구회’ 등은 모두 중앙동아리 명단에서 사라졌다. 신입생을 받은 6개 동아리는 동서양 고전을 연구하는 ‘고전연구회’와 농활 동아리 ‘녀름지기’, ‘손말사랑’(수화), ‘씨0’(환경운동), ‘통합과학연구회’, ‘호우회’(국가유공자 자녀 모임)뿐이다.

고려대 역시 1996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회과학 분야 16개 동아리 중 ‘KUCC’(옛 고대컴퓨터클럽), ‘한국사회연구회’, ‘철학마을’(옛 독일철학강좌회), ‘UNSA’(국제연합학생회), ‘한국근현대사연구회’ 등 7개만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사회문제연구회’, ‘한국상경학회’, ‘일하는 사람들’(민중운동) 등은 살아남지 못했다.

사라진 동아리는 20년 이상 역사를 이어오던 곳이 대다수. 1988년 창립된 ‘일하는 사람들’은 신입생의 외면으로 22년 만인 지난해 중앙동아리에서 퇴출됐다. 지난해 동아리회장인 장현수 씨(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07학번)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운동에 대한 대학가의 관심이 사라지면서 2009년부터 신입생이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1975년 4월 설립된 서울대의 국가유공자 자녀 모임인 ‘호우회’는 모임 목적을 국가유공자 위상 찾기에서 대중문화 연구로 바꿨다. 호우회 측은 “국가유공자 자녀 수가 줄어든 데다 학생들의 관심 부족으로 3년 전부터 가입 자격을 서울대생 모두로 개방하고 연구 목적도 덜 부담스러운 영화나 연극 등 대중문화 공유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 소믈리에, 파티플래닝, 흑인음악…


2009년 고려대 “음악에 맞춰” ‘사회과학계열 동아리는 몰락하고, 재미와 실용으로.’ 서울대와 고려대 동아리 가운데 최근 10여 년간 사회과학 동아리(위 사진)는 신입생을 받지 못해 폐지되는 등 명맥이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신 밴드(아래 사진)나 댄스, 애니메이션 등 취미와 맞는 동아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DB
2009년 고려대 “음악에 맞춰” ‘사회과학계열 동아리는 몰락하고, 재미와 실용으로.’ 서울대와 고려대 동아리 가운데 최근 10여 년간 사회과학 동아리(위 사진)는 신입생을 받지 못해 폐지되는 등 명맥이 끊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신 밴드(아래 사진)나 댄스, 애니메이션 등 취미와 맞는 동아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동아일보DB
이념학술 분야의 쇠퇴와 함께 최근 몇 년간 예술 분과나 생활문화 분과에 신설된 동아리들이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새로 생긴 동아리로는 와인이나 흑인 솔, 애니메이션, 마술 등 신세대의 입맛에 맞는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아리들. 고려대 와인동아리 ‘소믈리에’ 회장 임재영 씨(21·생체의공학과 10학번)는 “올해는 신입생 선발 경쟁률이 치열해 이력서와 에세이를 통한 서류전형과 면접까지 거쳤다”며 “14명을 뽑는 데 경쟁률이 거의 3 대 1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도 스트리트댄스나 흑인 음악 등 새로운 사회적 관심을 반영한 동아리들이 신입생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대 스트리트댄스 동아리 H.I.S 소속 온대권 씨(25·재료공학부 05학번)는 “최근 신입생들에게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로 올해는 140명이나 지원서를 내서 3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념보다는 재미와 실용


사회과학 동아리의 쇠퇴는 10여 년 전부터 두드러진 ‘탈이념’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임용수 씨(26)는 “사회과학 분야의 동아리들이 주로 관심을 가지는 이념이나 민주화 등의 구호는 이제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며 “음악, 춤 등 재미가 있거나 실질적으로 취업 등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회가 학생의 관심을 한쪽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의 한 사회과학 분과 동아리 회장은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기업이 원하는 경제학, 경영학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처럼 자본주의와 철학에 대해 논하는 학생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로 인식하는 한 사회과학 동아리는 예전처럼 인기를 모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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