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생들이 털어놓은 ‘돈에 멍든 음대’ 실태

  • Array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음대교수 막강… 별도 레슨비-졸업논문비 요구땐 거부못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김인혜 서울대 음대 교수(49·여)가 제자 폭행 혐의로 지난달 28일 학교에서 파면되면서 불합리한 음대 교육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만난 음대생과 음대 졸업생들은 “교수의 폭행은 흔한 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음대생이 레슨비와 졸업 논문비 요구, 연주회 표 강매 등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몹시 힘들어한다”고 증언했다. 음대생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로는 레슨비가 꼽힌다. 수업 중에 받는 레슨은 등록금에 포함돼 있지만 교수들이 ‘별도의 레슨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고 학생들은 호소했다. 유학이나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요청하는 형식으로 별도 레슨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수가 “레슨 나오라”고 하면 사실상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학생들은 설명했다. 》

이화여대 음대 대학원 졸업생 A 씨는 “레슨은 주로 방학 중에 이뤄지는데 교수가 오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 담당 교수가 ‘너는 실력이 미흡하니 더 배워야 한다’는데 거부할 수 있는 학생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추가 레슨비는 시간당 15만∼30만 원 선. A 씨는 “20만 원을 봉투에 넣어드리면 (적다고) 돌려주는 교수도 있다. 어떤 교수는 ‘너 뭔가 잘못 알고 있다. 레슨비 이 정도 아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교수들은 현금으로 레슨비를 받지만 세무 당국에 이를 신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연스럽게 탈세까지 이뤄지는 셈이다.

교수들에게 주는 고가의 선물도 대다수 음대에서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고 학생들은 말했다. 중앙대 음대생 B 씨는 “선물은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것만 세 번이다. 지도교수님 생신, 스승의 날, 교수님 연주회다. 클래스가 10명이어서 5만 원씩 걷어 해외 명품 머플러를 해드렸더니 교수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연세대 음대생 C 씨는 “5만 원짜리 상품권을 드렸더니 ‘조카 세뱃돈으로도 15만 원을 준다’라며 기분 나빠한 교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선물 외에 학부모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목돈을 내기도 한다. 서울대 음대 졸업생 D 씨는 “(교수의) 라인을 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돈을 걷어서 교수 방의 소파, 에어컨을 바꿔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교수가 논문심사를 하며 학생에게 수십만 원씩 돈을 받는 경우도 흔한 사례로 꼽혔다. 일부 대학에서 공식적인 논문심사비를 받기도 하지만, 이와는 별도의 개인적인 ‘심사 수고비’다. A 씨는 “돈을 주지 않으면 논문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데 차라리 돈을 주는 게 낫다. 주로 케이크를 준비해 돈 봉투를 넣는다”고 전했다.

자신의 공연 티켓을 학생에게 대량으로 파는 경우도 관례로 통했다. 한양대 음대 대학원생 E 씨는 “공연 티켓의 경우 교수가 ‘몇 장 필요해’라고 물으면 (필요 없는데도) ‘5장 이상 주세요’라고 말한다. 독주회는 표 값이 1만∼2만 원이지만 여러 명이 출연하는 콘서트의 경우 10만 원까지 해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교수 방을 청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톨릭대 음대생 F 씨는 “주로 저학년들이 조를 짜서 한다. 음대 기강도 바로잡고, 교수님 편의도 봐드리는 일이다. 불합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학교 문화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음대생들이 이처럼 교수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음대 특유의 폐쇄된 교육시스템이 꼽힌다. 음대는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정해지면 졸업까지 4년 내내 한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교수는 학생의 학점뿐만 아니라 콩쿠르, 유학, 취업 등 학생의 장래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학생은 지도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내색할 수 없다.

한 음대생은 “교수는 음대생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다. 거역할 경우 음악계를 떠나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음대생도 “교수의 인격이나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도교수를 바꾸겠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면 완전히 ‘찍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잘 보여야 하고, 힘들어도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들은 바 없는데…” 대학당국은 뒷짐만 ▼
개인간 레슨 파악 어렵고 금품수수 처벌 규정도 없어


음대생들이 교수들에게 원하지 않는 레슨을 받으며 금품을 바치거나 개인적 시중을 들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는 데는 음대와 대학 당국도 책임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취재에 응한 음대와 대학 모두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기본적 실태 파악조차 외면하고 있었다.

서울대 음대 행정실장은 “교수가 다른 학교에 가서 강의할 때는 학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을 정규수업 외에 가르치는 것에는 별도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강의시간에 교수가 실기 지도를 하는 일은 있지만 별도의 돈을 받고 수업 외 레슨을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음대 행정실 측도 “과에서 전공 실기 향상을 목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MT식으로 레슨을 가는 일은 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이 (개인적으로) 별도 레슨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학교 측이 신경 쓰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레슨은 교수와 학생 사이에 개인적으로 이뤄지고, 시기 또한 주로 방학에 집중되기 때문에 학교 측이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음대에 만연한 레슨비나 선물 등에 대해 별도 규정이나 실태 파악이 없어 문제가 불거진 다음에야 사태 수습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서울대가 이번에 파면한 김인혜 교수에게 적용한 규정도 학교 전체나 음대의 별도 기준이 아닌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국가공무원법 제61조 청렴의무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등 국가공무원법 위반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 교수는 “서울대나 한예종 등 국립대는 국가공무원법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다른 사립 음대의 경우 처벌이 가능할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는 학교로부터 월급을 받기 때문에 학생이 수업 외에 배운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대가 없이 가르치는 게 맞다. 선물이나 레슨으로 학생을 노예처럼 부리는 교수들의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교수들 스스로도 (불합리한 음대 현실에 대한) 양심 선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취업문 넓은 외국선 ‘교수독재’ 상상못해 ▼
한국 특유 ‘연줄-간판문화’ 한몫


유럽과 미국 같은 예술 선진국도 음악인을 양성하는 교육제도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합대학에 음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음악전문교육기관(콘서버토리)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교수가 지위를 악용해 학생에게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횡포를 부리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게 유학생들의 전언이다.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많은 음악인은 음대생들의 진로가 한정돼 지도교수에게 온전히 장래를 맡길 수밖에 없는 한국 특유의 구조를 꼽았다.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 사회 음악교육이 발달했고 이는 대부분 초중고교나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진행돼 수많은 음악교육인을 필요로 한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극장이 있어 실력에 따라 단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제한된 수의 교직이나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진로가 한정돼 있고 채용 경로도 교수들의 학맥과 인맥에 의지하기 때문에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독일에 유학 중인 30대 음악인 M 씨는 “유럽에서는 지자체나 학교에서 이뤄질 수준의 음악교육도 한국에서는 사적인 레슨 형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학생이 어릴 때는 갓 음대를 졸업한 이른바 ‘새끼선생’이 레슨을 하다 이후 학맥으로 엮인 강사급 음악인에게 인계하고, 고등학교 때는 같은 학맥의 교수에게 ‘넘기다’ 보니 그 학교 파벌에서 찍히면 레슨조차 쉽지 않다는 것. M 씨는 “한국에서는 오케스트라 등의 오디션도 형식적이고 실제로는 학맥 위주로 뽑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도 이유로 꼽혔다. 한국에서 음대를 가는 학생은 대부분 부모의 뜻에 따라 어릴 때부터 레슨을 받는다. 대입을 앞두고는 시험곡만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결국 연주 실력은 비슷비슷해지고 심사위원의 주관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학부모로서는 그 학교 교수에게 불법적인 과외라도 받게 해 합격의 가능성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학생이 교수에 종속된다.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한 40대 초반의 음악인 K 씨는 “불법 레슨의 가격을 올려놓고 교수에게 절대적 지위를 부여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식을 더 유리하게 만들고 싶은 부모”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류원식 기자 news@donga.com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