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애인 사망 숨기고… 한국판 ‘유령 연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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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만4070명 샘플조사… 127명 사망 드러나
11명은 유족이 수령… 日 작년 23만 ‘유령노인’ 파문

서울 은평구에 살던 정모 씨는 2002년 12월 61세로 사망했다. 그러나 정 씨 가족은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정 씨가 생전에 받던 장애연금을 지난해 2월까지 7년 넘게 받았다. 유족이 86개월 동안 부당하게 받은 연금은 모두 3200만 원. 지난해 3월에야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국민연금공단은 즉시 지급을 중지하고 이미 지급한 연금의 환수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 공단이 70세 이상 고령자와 중증장애 수급자 가운데 1만4070명을 대상으로 시범조사를 한 결과 127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116명은 최근 사망하거나 사망자의 가족과 연락이 두절돼 연금 지급을 하지 않았으나 11명의 경우 이들 가족에게 모두 5400만 원의 각종 연금을 계속 지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원 의원에 따르면 현행 제도 아래서는 유족이 사망신고를 제때 하지 않으면 서류상으로는 계속 생존한 것으로 처리돼 이런 부정 수급을 막기 어렵다. 수급자 실태조사를 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도 없어 국민연금공단은 공적 자료로만 수급자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또 이를 관리하는 직원이 270여 명에 불과해 280만 명의 연금 수급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도 어렵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호적에는 살아 있는 것으로 등재돼 있지만 사실상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100세 이상 ‘유령 노인’이 23만 명이 넘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7월 도쿄(東京)의 최고령 남성으로 등록된 111세 노인이 실제로는 약 30년 전에 숨진 것으로 드러난 것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긴급 호적조사를 실시해 밝혀낸 사실이다. 상당수의 경우는 가족이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사망 사실을 숨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원 의원은 2009년 11월 국민연금 수급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의무화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아직 보건복지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국민연금 부정 수급은 2007년 2만1500건, 108억2700만 원에서 2009년 2만7257건, 306억9900만 원으로 크게 늘고 있다.

국민연금은 아니지만 지난달 광주에서는 24년간 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속여 1억6000만 원의 보훈급여를 탄 문모 씨(60)가 경찰에 적발됐다. 광주지방보훈청이 관리하는 보훈급여 대상자는 1만2000여 명이지만 담당 직원은 1명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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