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집요하고 활발하게··· 고교동아리들 “우리가 세상을 바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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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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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부영여고 동아리 ‘사랑해 여수’는 여수세계박람회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우리말, 영문기사를 작성한다.
전남 부영여고 동아리 ‘사랑해 여수’는 여수세계박람회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우리말, 영문기사를 작성한다.
《지난해 11월 인천 인성여고에 인천 중구청 건설재난관리과 소속 공무원들이 방문해 가로등 추가 설치구역을 점검했다. 이는 인성여고 동아리 ‘프로젝트 시티즌’이 구청에 제기한 민원 덕분이었다. 이 동아리는 등하굣길 안전을 위한 순찰 강화, 가로등과 방범용 폐쇄회로(CC)TV 설치를 구청에 요구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민원은 짧은 ‘논문’ 수준이었다. 한 달 여간 공들여 준비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안전관리의 필요성, 피해사례, 그리고 지역주민 1050명의 서명을 담았다. 건설재난관리과 소속 공무원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 지역 가로등 전구를 밝게 바꾸고 위험 지역에 가로등을 설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고교 동아리가 전문화하고 있다. 광범위한 지역의 학생들이 모이는 연합동아리나 취미가 엇비슷한 학생들이 친목을 쌓는 수준을 넘어 이들은 방사선 연구, 지역 인지도 높이기 등 구체적이고 가치 있는 ‘단 하나’의 전문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세밀한 주제를 누구보다 치열하고 집요하게 연구해 깊이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작지만 강한 고교 동아리들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 동아리, 지역사회를 움직이다

서울 하나고 동아리 ‘소셜 밸류’는 공정무역을 실천한다. 사진은 이들이 공정무역 제품인 커피를 판매하는 모습.
서울 하나고 동아리 ‘소셜 밸류’는 공정무역을 실천한다. 사진은 이들이 공정무역 제품인 커피를 판매하는 모습.
집요하다. 고교 동아리 활동이 이렇게 치열할 수가…. 프로젝트나 실험 주제는 쉽게 바꿀 수 없을 만큼 특별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한 엄청난 집중력과 몰입도가 발휘된다.

구청의 마음을 움직여 학교 앞에 가로등을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낸 인천 인성여고 동아리 프로젝트 시티즌을 들여다보자. 2학년 학생 7명으로 구성된 이 동아리 회원들은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등하굣길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순찰강화 △가로등과 CCTV 설치 △청소년 보호거리 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설문조사, 시민 서명운동, 캠페인을 다각도로 진행하면서 어두운 밤 일어나는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손수제작물(UCC)까지 만들어가며 구청을 설득했다.

이 동아리 회원인 인성여고 2학년 고지은 양(18)은 “우리의 힘으로 모두가 안전한 밤길을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남 부영여고 동아리 ‘사랑해 여수(I Love Yeosu)’는 2012년 전남 여수시에서 열리는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뭉쳤다. 사랑해 여수 2기 대표인 이 학교 2학년 손지성 양(18)은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우리의 고향인 여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자는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수를 알리기 위해 ‘여수와 이순신’ ‘여수의 음식’ ‘여수와 오동도’ 등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사 한 편을 쓰는데 꼬박 두 달이 걸리는 난도 높은 작업이었다. 뱃멀미를 참으며 섬에 들어가 취재를 하고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소장을 만나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우리말로 작성한 기사는 학생들이 직접 영어로 번역했다. 영어기사는 여러 인터넷 언론사에 투고해 실렸으며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에 등록되기도 했다.

손 양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읽는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면서 “우리의 기사를 보고 여수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집요한 주제의식과 전문성, 어른들 뺨친다

경기 소명여고 방사선 동아리 ‘퀴리의 딸들’은 물체에서 발생하는 자연 방사선을 연구한다. 사진은 방사선 측정기 나비(NABI)로 방사선을 측정하는 장면.
경기 소명여고 방사선 동아리 ‘퀴리의 딸들’은 물체에서 발생하는 자연 방사선을 연구한다. 사진은 방사선 측정기 나비(NABI)로 방사선을 측정하는 장면.
경기 소명여고 동아리 ‘퀴리의 딸들’은 이름도 생소한 방사선 동아리다. 땅이나 물체에서 나오는 ‘자연 방사선’을 연구한다. 동아리 회원들은 종일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 ‘나비(NABI)’를 손에 쥐고 다닌다. 일상생활 틈틈이 방사선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다.

이 동아리 회원인 2학년 김하은 양(18)은 “기계를 작동하면 물체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수치가 나오는데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방사선 수치도 달라진다”면서 “다양한 장소와 시간에서 방사선을 측정하고 그 수치를 꼼꼼히 기록해 분석한다”고 말했다.

A4용지 한 장으로 이뤄진 방사선 측정표에는 측정 시의 날씨와 시간 뿐 아니라 △측정 장소의 바닥재료 △측정 장소에 있던 사람 수 △상수도관 유무 △창문과의 거리까지 상세히 기록된다. 측정 장소도 다양하다. 흔들리는 버스 안, 엘리베이터, 아파트 1층과 25층, 어항 위 등.

이들은 생활주변의 자연방사선 수치, 방사선을 쪼인 농작물의 발아억제현상 탐구 등과 같은 실험 결과물을 모아 논문을 작성해 올해 한국원자력안전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논문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양은 “학교축제 때도 ‘방사선 카페’를 열어 학생들의 몸에서 나오는 자연방사선 수치를 측정해주고 X선 사진들을 나눠줬다”면서 “방사선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아 이 분야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긴 집단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리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들을 찾아 조언을 듣고 현장을 체험하기도 한다. 서울 하나고 경제동아리 ‘소셜 밸류(Social Value)’가 그런 경우. 지난해 처음 결성된 이 동아리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경제활동 중 하나인 ‘공정무역’에 천착해 연구하고 실천한다.

이들은 우선 공정무역을 공부했다. 먼저 빈곤국가, 개도국 등을 후원하는 단체인 지구촌 나눔 운동의 이창덕 간사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이 간사는 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공정무역의 의미와 필요성에 관해 상세히 강의해줬다. 지난해 여름에는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는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본사를 찾았다. 견학하면서 공정무역이 경제 활동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꼼꼼히 배웠다.

소셜 밸류 회원인 하나고 1학년 문정선 양(17)은 “전문가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교내 학술제, 신입생 설명회, 공개수업 등 행사가 열릴 때마다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고 의미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인다”고 말했다.

유명진 기자 ymj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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