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어떻게 하지?”교과부-교육청 서로 입장다른 교육정책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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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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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칠까 말까” “방과 후 학교 확대? 축소?” 교장 및 일선교사 등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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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학교를 운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장관은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따라 성과급을 주겠다고 하고, 교육감은 시험 자체를 치르지 말라고 하니….” 서울의 한 중학교 L 교장은 요즘 학교운영에 그 어느 때보다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말엔 “참여도와 성적향상 정도를 지표로 학교 지원금과 교사 성과급에 차등을 두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 뜻에 따라 방과후 학교 운영계획을 짰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교육청에서 “강제적인 참여는 물론이고 선행학습 성격의 수업도 금지한다”고 밝혀 운영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간접체벌 기준에 대한 교과부와 교육청의 입장 차이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학생지도 방안도 확정하지 못했다. L 교장은 “예년엔 전년도 11월이면 연간 학교운영계획안을 확정했지만 이번엔 이제야 초안 작성을 마쳤다”면서 “매일 학교운영계획 회의만 2∼3시간씩 진행하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 보니 그 무엇도 쉽게 확정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서울 경기지역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요즘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이 각종 교육정책을 두고 사사건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 교과부가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하고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고 하자 이들 시도교육청은 “강제 참여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교과부는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이들 시도교육청은 아예 시험 자체를 없애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체벌금지를 둘러싼 대립도 좁혀지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체벌 전면금지 방침을 내놓자 교과부는 “팔굽혀펴기 등 일부 대체 지도는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시도교육청은 “신체적 처벌은 절대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 방과후 학교 신청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학생 늘어

이 같은 대립으로 적잖은 중고교 교장 및 교감들은 학교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2학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해 운영계획 윤곽이 잡혔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회의만 반복하는 학교가 적지 않은 것. 당장 1학기부터 시작할 방과후 학교 운영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문제다. 교과부 입장을 따라 방과후 학교를 확대·실시하자니 해당 시도교육청의 감사를 받을까 우려된다. 그렇다고 소극적으로 운영했다가 교과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다.

경기의 한 고교에선 13% 정도였던 방과후 학교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가 교육청 발표 이후 이를 잠정 보류했다. 이 학교 교감은 “각 과목 부장교사들이 한 달간 하루 2∼3시간씩 진행한 회의가 모두 쓸모없어진 셈”이라며 “다음 학기엔 참여를 독려해야 할지, 현행 방식을 유지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는 당장 겨울방학 방과후 학교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방과후 학교 참여를 두고 ‘해야 한다’ ‘강요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서는 과정에서 ‘방과후 학교가 과연 대학입시에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를 갖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다”면서 “많은 학생이 신청만 해놓고 막상 수업엔 들어오지 않는 탓에 수업진행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만 피해를 본다”고 전했다.

○‘시험 보게 해달라’는 학부모 항의로 몰래 사설 모의고사 보기도

시험 실시계획을 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교과부는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요구하는 반면 이들 교육청은 시험 자체를 줄이거나 없애려고 한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줘야 할지, 시험이 아닌 다양한 평가방식에 대해 연구해야 할지 고민이다.

전국단위로 치러지는 학업성취도 평가와 학력평가도 골칫거리. 특히 고1, 2의 경우 서울시교육청이 전국단위 학력평가 실시 횟수를 연 4회에서 연 2회로 줄이면서 “시험을 볼 대체방안을 마련해달라”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어지기도 한다.

고1 자녀를 둔 서울의 한 학부모는 “전국단위 학력평가는 고교생에게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해보도록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리허설’과 같다”면서 “전국단위 학력평가 시행 횟수를 줄인 건 대학입시라는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교과부와 교육청뿐 아니라 학부모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서울의 한 고교에선 학력평가를 대체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달 초 교사와 학부모 대표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원회가 긴급 소집됐다. 이 회의에선 ‘방과후 학교에 기출문제 풀이반을 별도로 마련한다’ ‘사설 모의고사 시험지를 별도로 구입해 학생들에게 나눠준다’는 등의 대안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학부모의 거센 항의로 일부 고교에선 몰래 학교 내에서 사설 모의고사를 치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체벌 아니냐’는 학생의 항의에도 ‘할 말 없음’

학생지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체벌금지 정책은 도입됐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 서울의 한 고교에선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지각을 한 학생에게 “5분 동안 손을 들고 서 있으라”고 말한 교사에게 학생이 “이것도 체벌 아니냐”며 항의한 것. 이 학교 A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당시엔 ‘어디서 대드느냐’면서 넘어갔지만 막상 학생의 말에 명확히 ‘아니다’라고 답할 수 없었다”면서 “체벌금지엔 찬성하지만 체벌에 대한 뚜렷한 기준과 대안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에서 뚜렷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하다 보니 학부모들이 직접 학생지도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선 얼마 전 긴급 학부모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선 학부모 차원에서 학생을 지도할 방법이 논의됐다. 회의에 참석한 중3 학부모 대표 10여 명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용의복장을 지도하기 위한 별도의 팀을 학부모들이 자체적으로 꾸려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또 학교 측에 체벌 기준뿐 아니라 두발 및 교복자율화에 대한 명확한 운영방안을 학기 시작 전까지 공지해줄 것을 공식 건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학부모 J 씨(48·서울 서초구·여)는 “정책이 갈팡질팡하면서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회도 덩달아 바빠졌다”면서 “교육현장을 무시한 정책 대립이 하루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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