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락 작년 사퇴는 ‘함바 의혹’ 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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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유상봉 씨에 해외도피 권유한 시점과 비슷
본인은 “용퇴” 주장… 경찰안팎선 “뭔가 있다” 의심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브로커 유상봉 씨(65·구속기소)에게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지난해 8월 임기 도중 사퇴 의사를 밝힌 시점이 유 씨에 대한 고소사건 수사 시기와 맞물려 유 씨의 로비의혹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강 전 청장은 임기 7개월을 앞둔 지난해 8월 5일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쇄신을 위한 새로운 진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경찰 후진을 위해 조직이 안정돼 있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해 용퇴하기로 결심했다”며 청장직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선 강 전 청장이 별다른 과오가 없는데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 이유가 석연찮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는 퇴임 발표 직전까지도 지인들에게는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때문에 “강 전 청장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옷을 벗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경찰 안팎에서 제기됐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임기 막바지인 2012년 9월경 한 번 더 후임 경찰청장을 기용하기 위해 강 전 청장을 교체하려 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의 최대 현안이었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이어서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 전 청장이 유 씨에게 4000만 원을 건네며 해외 도피를 권유한 시점도 지난해 8월경이고, 유 씨에 대한 건설업자들의 고소 고발이 여러 건 제기된 것도 같은 시기다. 검찰은 유 씨를 지난해 11월 24일 구속하고 12월 초부터 유 씨 진술을 토대로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로 확대했다.

유 씨도 자신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이 로비의혹 수사로 확대될 것이라는 낌새를 채고 주변 정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본보 취재 결과 유 씨가 운영하던 10여 개 식품유통 업체 대표 등 관계자들이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해 11월을 전후해 대부분 종적을 감춘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유 씨가 운영하는 원진씨엔씨의 서울 송파구 잠실동 M빌딩 6층 사무실은 일반 전화선이 끊긴 채 텅 비어 있었다. 빌딩 관리인은 “그 회사가 건물에서 나간 지는 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급식업체인 K사 대표 김모 씨(58) 명의의 송파구 방이동 집에는 현재 유 씨 측근이 머물고 있었다.

한편 유 씨는 원진씨엔씨 등 10개 식품유통 관련 업체의 대표이사와 감사 등 주요 직책에 친인척과 지인들을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자신의 신분은 철저히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원진씨엔씨의 경우 아들(43)이 서류상 대표이사였고, 급식업체 K사 대표 김 씨는 유 씨의 매제로 알려졌다. 유 씨 아들은 “내가 왜 바지사장으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 씨의 세 딸 중 한 명은 원진씨엔씨 감사, 다른 한 명은 K사 감사로 각각 재직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마당발 브로커’ 양대 인맥 호남-PK▼

호남향우회 통해 관료-경관들과 폭넓게 교류,PK인맥은 부산사업 근거지로 알음알음 넓혀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업자들 사이에서 ‘마당발’ ‘전국구’로 통했던 함바집 운영권 브로커 유상봉 씨의 인맥은 크게 ‘호남’과 ‘부산경남(PK)’으로 나뉜다.

전남 출신인 유 씨는 호남 출신 관료 및 경찰관 등과 오래전부터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주로 향우회 등을 통해 인맥을 쌓아왔다.

유 씨의 호남 인맥으로는 현재 검찰 안팎에서 유 씨의 로비 대상으로 거론되는 전직 장관 L 씨, 전직 공기업 사장 J 씨, 양성철 광주지방경찰청장 등이 꼽힌다. 또 내무 관료 출신인 민주당 조영택 국회의원에게는 2008년 8월 500만 원의 후원금을 기부한 적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유 씨를 동향 사람의 소개나 향우회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J 씨는 “향우회에서 처음 본 걸로 기억한다. 자주는 아니고 2008년 이전에 몇 번 봤다”고 했고, 양성철 광주지방경찰청장도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해서 만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유 씨의 PK 인맥은 그가 부산을 오랫동안 사업의 근거지로 삼아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지냈던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부산지방경찰청 차장 출신인 김병철 울산지방경찰청장, 2004년부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초대 청장을 지냈던 장수만 방위산업청장 등이 해당한다. 그는 이때도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지역 인사들과 친분을 맺었고, 이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을 발판 삼아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식으로 인맥을 넓혀갔다. 김병철 울산청장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2005년 부산청 차장 시절 호남 출신인 박모 전 부산청장의 소개로 유 씨를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유 씨는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통영시의 문화예술단체에 1억 원을 기부하는 등 지역 유지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연을 통해 알음알음 인연을 맺었던 인사들이 고위직에 오르면서 유 씨의 ‘파워’도 커졌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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