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전국으로 퍼지나]백신접종 ‘극단 처방론’ 다시 고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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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비보다 적게 들어” 주장… “수출입협상 큰타격” 반대론

21일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 방역 당국은 경기 북부 지역이 초토화된 데 이어 전국 각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쇄도하자 패닉 상태에 빠졌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피해만 해도 사상 최악인데, 강원과 충남까지 번지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구제역은 2000년 이후 발생한 구제역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 2000년 3월에는 3개 도 6개 시군에서 15건의 구제역이 발생해 2216마리의 우제류가 도살처분됐다. 1934년 이후 66년 만에 구제역이 발생한 당시에는 정부가 백신 접종이라는 극단의 처방을 통해 사태를 종식시켰다.

2002년 5월에는 2개 도 4개 시군에서 16건의 구제역이 발생해 16만155마리의 우제류를 도살처분했다. 이번 구제역은 2개 시도 12개 시군에서 무려 42건이 발생했다. 도살처분 규모 역시 이날까지 21만7356마리로 사상 최대다.

이처럼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백신 접종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매몰 비용은 물론 보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7일 국무회의에서 “매몰처분 비용이 과다하게 불어난다면, 백신 접종 방안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구제역으로 인한 보상 비용은 3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독약·초소운영 등 방역비, 가축수매자금, 경영안정자금 지원 등은 제외한 금액이다. 농식품부는 “만약 백신을 접종한다면 연간 992억 원가량의 비용이 든다”며 “첫해 2번 접종한 이후 매년 1차례 보강 접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신을 접종하게 되면 구제역을 빠르게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당초 “백신 사용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던 농식품부가 입장을 선회한 것도 구제역이 경북, 경기에 이어 어디로 확산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백신을 접종할 경우 관리가 어렵고, 국가 간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백신 접종을 하면 이후 1년 6개월 동안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얻지 못해 수출길이 막힌다. 백신 바이러스를 보유한 돼지는 상대국에서 수입을 안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돼지고기 1162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게다가 백신 사용 국가의 육류 수입을 거절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 아르헨티나 등 구제역 백신 접종 국가로부터 쇠고기 등 수입 허용 요구에 직면하게 되고, 협상 시 불리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축산업계에서 백신 사용을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당초 백신 사용을 검토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서 백신 사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농식품부는 21일 “백신접종을 안 하고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이 대원칙이었다”며 “그러나 접종 여부, 백신 접종을 하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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