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5도 지역은 한반도의 ‘화약고’… 주민 ‘피란민’ 신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0일 0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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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끼고 있는 서해5도 지역은 한반도의 '화약고'다.

서해 NLL을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시도로 1999년 1차 연평해전, 2002년 2차 연평해전, 2009년 11월 대청해전 등 남북 간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올 3월26일에는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해군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 승조원 46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천안함 폭침 사건 후 고조된 남북 긴장이 채 풀리기도 전인 지난달 23일, 북한은 급기야 해안포와 곡사포를 동원해 연평도를 무차별 사격했다.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형 사건을 1년에 2차례나 잇따라 겪은 서해5도민은 심각한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

생업인 바다에서의 조업이 통제됐고, 고조된 안보 불안으로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겼다.

'총알받이'의 심정에도 지금껏 삶의 터전을 고수하며 살아온 서해5도민의 입에 이젠 참다못해 '영구이주'라는 단어가 오르내리고 있다.

서해5도민은 그 어느 때보다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천안함 폭침…백령주민 생업서 두 손 놔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대청, 소청도에는 1000여명의 영세 어민이 근해로 나가 꽃게나 홍어, 까나리 등을 잡으며 생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까나리 조업은 어민 1년 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생계수단'으로 보통 4월에 시작해 5¤6월이 최적기다. 백령도 근해는 국내 까나리 주요 산지다.

그러나 올해 까나리 수확량은 예년의 3분의 2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3월 말 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의 함체 인양 작업이 장기화하면서 1개월가량 조업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예년보다 20일가량 늦은 5월 초부터 까나리잡이에 들어갔다. 여기에 이상기온으로 수온이 오르지 않아 까나리 어군이 늦게 형성돼 어획량이 더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백령도 두무진(연화3리)에서 까나리잡이를 하는 선주 김계남(58)씨는 20일 "예를 들어 작년에 300통을 잡았다면 올해는 200통도 못 잡았다고 보면 된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이미 지나간 일 다시 떠올려봐야 뭐가 좋겠느냐"라며 그때를 회상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어민뿐 아니라 백령도 주민의 65%가 종사하는 여행.숙박업 등 서비스업종도 천안함 폭침 여파로 휘청거렸다.

인천시 옹진군에 따르면 올 3월 백령도를 찾은 방문객은 3780명으로 지난해 동기(3천566명)보다 6% 증가했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사건(3월26일) 이후인 지난 4월 방문객은 352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5698명)에 비해 38%가 줄었고, 5월 방문객은 4천844명으로 작년 동기(1만795명)보다 55% 감소했다.

6월(8%↓), 7월(8%↓), 8월(13%↓)에도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백령도 사곶해수욕장 인근에서 횟집과 민박집을 운영하는 이모(58·여)씨는 "3월에 손님들이 온다고 해서 날 좋은 4월이나 5월에 오라고 예약을 잡아놨는데 그 일이 터지는 바람에 손님들이 다 끊겼다"며 "피해를 말로 다 할 수 없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설상가상' 연평도 포격…주민 '피란민' 신세

천안함 폭침의 충격과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엔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 북한의 포탄이 무차별로 쏟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북한의 포격에 주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다행히 여객선이 들어올 시간이라 부두에 나갔거나 물때를 맞춰 굴을 따러 간 주민들이 많아 주민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인근 해병대 막사 신축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 2명이 포격으로 희생됐고, 군 장병 2명도 청춘을 못다 피운 채 숨졌다.

20일 현재 집계에 따르면 포격과 화재로 완전히 부서지거나 반파된 집이 27채, 창문이 깨지는 등 일부 파손된 집이 133채에 달한다. 창고나 식당 등 기타 시설 29곳도 부서지거나 불에 탔다.

순식간에 집과 삶의 터전을 잃은 연평 주민들은 공포와 불안감에 섬을 등지고 피란길에 올랐다. 6·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피란 행렬은 이어져 포격 후 3일 뒤인 11월26일 연평도에 남은 주민은 단 21명뿐이었다. 전체 주민 1천400여명 가운데 98.5%에 이르는 주민이 섬을 떠난 것이다.

피란민들은 인천의 찜질방 '인스파월드'나 친지 등의 집에 1개월 가까이 머물다 19일부터 경기 김포의 미분양 아파트에서 임시 거주를 시작했다.

찜질방 생활은 벗었지만 주민들이 11월23일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날은 요원해 보인다.

포격 피해를 본 가옥이나 시설 복구에만도 수개월이 걸릴 예정인 데다, 복구가 된다 해도 언제 또 북한이 도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부 주민은 '영구 이주'까지 고려하고 있다.

조업 통제에 따른 어민 피해, 연평도를 둘러싼 긴장 고조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는 것도 연평 주민들의 앞날을 막막하게 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백령도 주민에게도 날벼락이었다.

백령도 횟집 주인 이 씨는 "천안함때의 타격으로 지금까지 힘들다가 이제야 조금 회복되나 했는데 연평도 사고까지 터져 겨울 장사도 다 망쳤다. 백령도 주민들은 살수가 없다"라고 한탄했다.

서해5도민 "남북 대치 해소가 근본 대책"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국회는 북한의 무력도발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서해 5도 주민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담은 '서해5도 지원 특별법'을 마련 중이다.

법안은 행정안전부가 서해5도민을 위한 안전한 정주 여건 조성, 교육, 보건 등 생활환경 개선, 육지 왕래 및 생필품 유통, 공급 방안, 주민 안전확보 대책 등이 포함된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발전계획에는 각종 사업비 지원과 조세 부담금 감면, 노후주택 개량 지원, 정주생활지원금 지급, 수업료 감면 등 각종 지원과 특례 규정이 포함될 예정이다.

인천시도 기상악화 여파로 결항이 잦은 연안여객선을 대형화하고 서해5도민에게 난방유를 면세로 공급하는 등의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또 연평도 포격사태로 서해5도민이 입은 정신.신체.재산상 손실에 대한 지원도 요청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런 정부 대책이 과연 어느 정도 구체적인 지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백령도 주민 이 씨는 "특별법을 만든다고 해봐야 얼마나 지원을 해주겠느냐. 아무리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해도 그건 일시적일 뿐, 현지 사람들이 먹고살 게 없으면 소용이 없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백령도는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만큼 정부가 불안감을 없애고 홍보를 많이 해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직접 포격을 당한 연평도 주민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유사시의 재난대비 시스템을 확고히 갖출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연평도 주민 김모(39)씨는 "당시 연평도는 무정부상태였다. 후방지원이 없으니까 '여기서 스스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며 "유사시 전 주민에 대한 이송조치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항구적으로 섬을 요새화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예 남북 간 대치가 없어져야 한다"며 "현 정부가 북한과 단절한 대화를 재개하고 해주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드는 등 북한 체제 개방을 꾀해 서해 평화벨트를 조성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 외교 안보 고위관리였던 한 전문가도 "서해 5도를 평생 긴장지대로 두고 주민들에게 살라고 할 수는 없다"며 "단기적으로는 서해5도민을 위한 여러 경제지원과 안전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큰 틀에서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호전시키려는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같은 방안을 마련해서해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서해5도 안정의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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