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세계인의 술로/4부]<2>대기업 참여 명과 암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明 대형 유통망 활용 시장확대 효과… 暗 직접 제조땐 영세업체 도산 우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시장 파이를 키우고 세계화를 돕는다”는 찬성 논리와 “영세, 중소업체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반대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올해 CJ 제일제당과 유통계약을 맺고 전국에 막걸리를 납품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 중소 막걸리업체 ‘우포의 아침’ 박중협 대표가 자사 제품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CJ제일제당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시장 파이를 키우고 세계화를 돕는다”는 찬성 논리와 “영세, 중소업체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반대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올해 CJ 제일제당과 유통계약을 맺고 전국에 막걸리를 납품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는 중소 막걸리업체 ‘우포의 아침’ 박중협 대표가 자사 제품을 들고 있다. 사진 제공 CJ제일제당
경남 창녕군 대지면에 위치한 막걸리 제조업체 ‘우포의 아침’ 박중협 대표는 요즘 출근길 발걸음이 가볍다. 조부 때부터 3대째 가업으로 생산해온 전통 막걸리 ‘탁주를 사랑하는 마음’의 매출이 올해 8월 CJ제일제당과 유통 대행계약을 맺은 뒤 5배로 뛰었기 때문.

‘우포의 아침’ 외에도 충북 제천과 전북 전주의 일부 막걸리 업체들은 유통 대행계약을 맺은 CJ의 냉장유통 체인을 활용해 전국 대형마트 등에 자사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 막걸리 사업이 오랜만에 활기를 띠고 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맛과 품질은 최고라고 자부하면서도 지방 영세업체라 많은 소비자에게 제품을 선뵐 기회가 없어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대기업 덕분에 제품을 전국에 유통시킬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봉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부장은 “냉장 유통망 제공 외에도 막걸리의 탄산가스는 배출시키면서도 내용물은 안 새는 병마개도 개발해 제휴 업체에 로열티 없이 제공하고 있다”며 “병마개 개선으로 유통기한도 10일 안팎에서 15일로 늘었다”고 말했다.

○ 대기업 “우리 참여가 파이 키운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는 이미 늘어나고 있다. 진로-하이트는 올해 3월부터 경기 포천시의 ‘상신주가’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만든 막걸리로 일본 수출을 개시해 10월까지 총 50만 상자를 판매했다. 판매 호조로 올해 판매 목표도 70만 상자로 늘려 잡았다. 올해 7월에는 롯데주류가 서울탁주의 자회사인 서울장수주식회사가 만드는 ‘월매 막걸리’의 일본 수출대행을 맡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농심은 최근 회사 정관상에 ‘특정주류도매업 진출’을 추가하면서 생막걸리 유통 사업에 뛰어들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막걸리 제조업체를 직접 인수한 대기업도 있다. 올해 오리온그룹은 관계사인 미디어플렉스를 통해 경기 광주시에 있는 ‘참살이탁주’의 지분(60%)을 인수하고 설비 확장에 들어갔다. 대기업들은 ‘막걸리 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 ‘수출을 통해 막걸리 세계화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행보를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대기업과 제휴를 맺은 중소업체들을 중심으로 매출과 투자가 늘어나는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많은 영세, 중소 제조업체들은 “막걸리가 외면 받을 때 어렵게 시장을 지키며 붐을 일으켰더니 대기업이 과실만 가로채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대기업이 직접 막걸리 제조에 뛰어드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 中企 “대기업 지배 막을 제도 있어야”

올해 7월 전국 22개 중소 막걸리 제조사가 ‘한국막걸리 제조협회’를 결성한 것도 대기업의 시장 진출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하명희 한국막걸리 제조협회 초대회장(이동주조 이사)은 “대기업이 막걸리 제조까지 손을 대면 영세업체들은 줄도산에 내몰릴 것”이라며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조 부문 진출이나 대형마트의 ‘1+1행사’ 같은 횡포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진출이 막걸리 맛의 획일화와 시장의 과점 구조를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국 단위 유통을 위해 균일한 맛과 대량 생산을 추구하다 보면 막걸리의 ‘지역색’은 사라지고 ‘대기업 브랜드가 달린 특색 없는 술’만 양산될 수 있다는 것. 막걸리제조업체 ‘우리술’의 박성기 대표는 “막걸리 생산이 대기업 직영화나 하청화되면 소주, 맥주처럼 막걸리 맛도 획일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막걸리 산업 선진화를 위해서 대기업의 역할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제조에 뛰어들면 영세업체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중소업체가 제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대기업은 연구개발과 마케팅, 브랜드 개발, 유통 등을 맡게끔 교통정리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대기업이 광역 단위로 지역 중소업체들과 마케팅 연합을 구축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며 “농수산물유통공사(aT) 등이 중심이 돼 중소업체에는 시설 현대화 자금지원(융자)을 늘리고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은 근절하는 등 상생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