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벌 받더라도 ‘하도급 횡포’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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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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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공사대금 10억 못받은 不法재하도급업자 경찰에 고소장

실내건축업체 대표인 홍모 씨(47)는 22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인테리어업체인 A 사 임직원 6명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하도급을 받는 A사는 국내 10대 인테리어업체 중 한 곳으로 꼽힌다. 홍 씨는 2004년부터 A사로부터 재하도급을 받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내 경주차로 ‘스피드웨이’의 관람석을 비롯해 용인시 수지구 일대 아파트 내장공사 등을 해왔다.

하지만 A업체는 올해 8월까지 6년여에 걸쳐 공사대금 10억 원가량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홍 씨의 주장이다. 또 A사 임직원들은 공사를 주는 대가로 수시로 금품 및 향응 접대를 요구해 상품권과 현금 등 6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줄 수밖에 없었다. 홍 씨는 “금품 제공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먹고살려면 A사에 잘 보여야 했다”며 “나도 함께 처벌을 받더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불법 재하도급 관행이 영세 하도급업체들을 한 번 더 울리고 있다. 건설공사 과정에서 대기업 등 발주처로부터 공사를 따낸 하도급자가 다시 하도급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재하도급’ 관행은 2008년 1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으로 사실상 불법이 됐다. 재하도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건설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부실공사가 발생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 개정법에 따르면 재하도급은 전체 하도급 금액의 20% 범위 내에서, 전문건설 면허가 있는 업체에 한해 발주자의 서면승낙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법 취지와 달리 재하도급 관행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중간하도급자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법 개정 이후 홍 씨 같은 재하도급업체들도 하도급업체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하도급업체 관계자들은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홍 씨는 “바뀐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재하도급을 받기 위해 어렵게 전문건설 면허도 취득했지만 정작 A사가 발주자의 승인을 받아주지 않아 불법으로 일을 해야 했다”며 “힘의 우열관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하도급업체와 재하도급업체 간에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재하도급업체 대표도 “우리는 영세해 제대로 된 입찰 기회조차 접하기 힘들다”며 “중간하도급업체들에 뇌물을 뜯기고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기생해야 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재하도급 위반으로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는 2008년 79개사에서 지난해 87개사로 늘어났다. 재하도급에 따른 영세업체 피해가 늘어나면서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지난해부터 국토부와 규제개혁추진단 등에 법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재하도급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며 “법 조항에서 발주자 승낙요건 및 재하도급 허용비율을 삭제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홍 씨의 주장에 대해 A사는 “현장에서 워크숍 등을 열 때 하도급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찬조금을 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공사를 대가로 직원들이 금품을 수수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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