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폭력·음란 욕설의 일상화 vs 우리학교는 예절교육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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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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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배틀’ ‘욕애플리케이션’ 초중고생에 인기
“인성교육 급하다”… 밥상머리교육·칭찬문집 등 실천

《1일 서울 B 중학교의 3학년 교실. 쉬는 시간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콩쥐와 팥쥐 중 누가 정말 나쁜 사람인가’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콩쥐가 더 나쁘다”고 우기던 정모 군(15)은 “팥쥐가 당연히 나쁘다”는 친한 친구 박모 군(15)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미친 ××야. 콩쥐가 나쁘다고∼.” 이 순간 게임하듯 서로 욕을 해대는 일명 ‘욕배틀’이 시작됐다.

“×발 ×새야. 프라이팬에 볶아먹을 ×.” “닥쳐 ××, 몸에 사는 기생충만도 못한 ×아.” “××럴.” “××새끼.” 10분 간 서로 욕설을 퍼붓던 중 정 군이 ‘직격타’를 날렸다. “니 얼굴에 ×이나 칠해. ○○이(같은 반 남학생 이름) ×에 머리 처박을 놈아.” 박 군이 순간 멈칫했다. 다음에 이을 욕설을 떠올리지 못하고 말을 더듬거리자 정 군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겼다∼. ×발 ×나 좋아!”

정 군은 “공부 스트레스를 풀려고 가끔 욕배틀을 한다”면서 “재미 삼아 하는 놀이라서 서로 기분 상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잖은 초중고생 사이에 욕설은 어느덧 ‘일상’이 됐다. 더 자극적인 욕을 서로에게 해대는 ‘욕배틀’이 유행하는가 하면, 스마트폰에서 화면을 터치하면 각종 욕설이 성우의 음성으로 나오는 ‘욕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엔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나 여학생 사이에서도 욕설이나 비속어는 남발된다.

청소년 바른문화 만들기 모임 ‘GSGT(Good Student Good Teacher)’를 이끄는 서울 광남중 정미경 국어교사는 “요새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나 얌전해 보이는 여학생도 ‘×라’ ‘×나’ 등의 비속어를 습관적으로 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고 말했다.

○ 끔찍한 낙서들


서울 S 중학교 3층 화장실 입구의 벽면은 낙서로 가득하다. 남녀 간 성관계를 묘사한 그림, 남녀의 성기 그림 등 중학생의 낙서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위가 높은 그림들이 지천이다. ‘나랑 한판 뜰 사람? 010-3×××-××××’이라는 문구와 더불어 ‘××야(교사 이름), 죽어라’처럼 교사를 욕한 문구도 보인다. 학생들은 낙서를 보고 “야, 이거 누가 그렸냐? ×나 웃기다”라며 깔깔거리며 지나갔다.

이처럼 음란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보이는 연령대는 중고생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초등학생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현장 교사들의 전언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2009년 교권회복 주요사례’에는 초등학생이 사소한 일로 교사에게 폭언을 한 사례가 나온다. 5학년 A 군(11)은 반장 선거 중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로 음악을 틀고 “랜덤! 랜덤!”을 외치며 선거를 방해했다. 담임교사가 휴대전화를 압수하자 A 군은 “×발×아, 내놔”라며 휴대전화를 도로 빼앗으려 했다. 담임교사가 주지 않자 A 군은 의자를 들고 교사에게 달려들었다. 옆 반 교사가 달려와 겨우 상황이 마무리됐다.

문제는 소수 불량한 학생들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7년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퇴직한 김영화 씨(57·여)는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이라는 책을 펴내 초등학생들의 인성 실태를 고발했다. 이 책에는 수업시간에 반 여학생에게 ‘나랑 섹스하자’라고 쓴 쪽지를 보내거나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수업 중 한 학생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았어요. 주의를 줬더니 욕을 하며 대들더군요. 나중에 시험을 보면 성적은 잘 나와요. 예전엔 주로 결손가정의 학생들이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전반적인 현상인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 인성교육에 나서는 학교들

청소년 인성 문제가 심각해지자 학교들이 인성교육에 나섰다. 예절실에서 학생들에게 식사예절 및 언어예절 교육을 하는 서울 원묵중의 모습(위쪽). 서울 광남중 정미경 교사가 이끄는 청소년 바른문화 만들기 모임 ‘GSGT’의 피켓 캠페인 현장.
청소년 인성 문제가 심각해지자 학교들이 인성교육에 나섰다. 예절실에서 학생들에게 식사예절 및 언어예절 교육을 하는 서울 원묵중의 모습(위쪽). 서울 광남중 정미경 교사가 이끄는 청소년 바른문화 만들기 모임 ‘GSGT’의 피켓 캠페인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학교들은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마련하고 있다. 서울 중랑구 원묵중학교는 6월 교내 건물에 예절실을 완공했다. 이곳은 ‘높임말 쓰임자리’로 지정됐다. 예절실 안에서는 친구들끼리도 높임말을 쓴다. 교사도 학생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예절교육을 받을 차례가 된 1학년 7∼8명이 전담교사를 찾아온다. 함께 밥을 먹으며 식사예절을 익히는 ‘밥상머리교육’ 시간을 갖는 것.

좌식책상에 모여 앉은 학생들은 점심급식이 도착하자마자 숟가락을 들기 바쁘다. 이때 함께 앉아있던 손성호 진로인성부장 교사가 “선생님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밥을 먹으면 안 되겠죠”라고 넌지시 말하자, 학생들은 입까지 집어넣었던 숟가락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경기 안양시 부림초에 다니는 2학년 최모 군(8)의 어머니(35)는 요즘 아들 걱정이 한결 덜하다. 최 군은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크다. 작년만 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최 군은 학교에 안 간다며 떼를 쓴 적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 부림초가 ‘칭찬문집’ 프로그램을 마련한 뒤로는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이 부쩍 줄었다. 칭찬문집은 반 친구들이 한 학생을 정해 칭찬한 문구들을 모아 문집으로 만든 뒤 해당 학생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남보다 유달리 큰 자기의 덩치를 부끄러워해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얼마 전 칭찬문집에 ‘넌 몸집이 커서 다른 친구들이 책상을 옮기는 것도 잘 도와주는 착하고 멋진 아이야’라고 친구가 쓴 내용을 보고나선 태도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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