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업계 24년만에 無파업… 협력사 “2, 3억씩 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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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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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비 부담 줄었다” 반색

24년 만에 자동차업계에 ‘파업 없는 여름’이 찾아오자 매년 불규칙한 생산으로 어려움을 겪던 관련 중소기업이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 협력업체들은 원청회사의 파업 때문에 공장을 쉴 때도 꼬박꼬박 나가던 수억 원의 고정비를 올해는 아낄 수 있었고,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스트레스나 직원들이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도 크게 줄었다.

1일 동아일보가 접촉한 중소 협력업체 사장들은 “자동차회사 노조가 파업을 하면 우리도 공장을 놀릴 수밖에 없지만 놀아도 고정비는 그대로 나갔다”며 “매년 7, 8월이면 파업 때문에 고정비 2억∼3억 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올해는 이 부분이 없어져 경영애로가 한층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지난해 기준 자동차산업군 내 중소기업들이 한 달 동안 조업을 하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약 1조1596억 원에 달했다. 고정비는 감가상각비, 보험료, 임차료, 이자비용, 노무비 절반 등이 포함된다. 완성차 제조사가 한 달간 파업을 하면 중소 협력업체는 이만큼의 돈을 고정비로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공장이 서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도 문제였다. 현대자동차와 GM대우자동차에 도금부품을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 ㈜SKC의 신정기 대표는 “파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죽기살기’ 분위기로 봉급을 깎고 종이 한 장 쓰는 데도 잔소리를 하게 되니 직원들 사기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파업을 안 하는 것이 납품단가 올려주는 것보다 우리 처지에서는 더 고마울 정도”라고 말했다.
▼ ‘24년만의 車업계 무파업 여름’ 보낸 협력업체들의 웃음소리

현장에서도 완성차 업계의 무파업으로 협력업체의 분위기가 밝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7월 26일 찾아간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 내 SKC 공장 1층 도금생산팀 작업장에서는 자동차 바퀴에 장착하는 ‘플라스틱 휠캡’을 도금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은색이 되어 쏟아져 나오는 휠캡 완성품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신 대표는 “도금공장은 도금액이 담긴 탱크를 일정 상태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탱크 온열·냉각에 월 2억5000만∼3억 원이 관리비로 나간다”며 “현대차 파업이 두 달을 넘기면 그해 이익을 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100억 원, 영업익 8억 원, 순이익 3억 원 수준이다.

파업 시에는 현금 유동성 부담도 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용 머플러 제조사는 “중소기업에서는 1년에 2억∼3억 원 이익 내기가 참 어려운데 여름 한 달 동안 수입 없이 그만큼의 돈을 고정비로 쓰면 버티기가 정말 어렵다”고 토로하며 “현대차가 한 달 파업하면 우리는 4∼5개월 고생하는 만큼 파업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사기도 올라갔다. GM대우차 납품업체인 A사에서 15년째 근무하는 정지숙 씨(52·여)는 “2008년 GM대우차가 파업할 때는 이틀 일하고 이틀 쉬고 했더니 받은 돈이 최저임금 수준이었다”며 “지금은 일감이 많아 주말에도 나오지만 기분은 더 좋다”고 말했다. 정 씨가 요새 더 받는 돈은 한 달에 30만∼40만 원이다. 2008년과 비교하면 60만∼70만 원을 더 받는 셈이다.

자동차회사 노조가 얻어낸 ‘결실’을 보면서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도 올해는 줄었다. 자동차 도어프레임 제조사인 네오텍 최병훈 대표는 “자동차회사 노조는 한 달 동안 파업하고 나면 500만 원가량의 장려금에 휴가비까지 받는다”며 “그동안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회사에 나오던 협력업체 직원들은 심한 상실감을 느끼곤 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 대표는 “완성차 노조는 며칠 드러눕고 장려금 받는데 우리는 그동안 간신히 최저임금만 받고 버티는 신세”라며 완성차 제조사 노조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또 파업 후 연간 생산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몰아치기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연장근무로 인해 그만큼 더 많아지는 인건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중소기업 사장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현대·기아차 협력사 대기산업의 이동훈 부회장은 “원래 급여가 1이라면 연장근무를 할 때는 1.5를 줘야 한다”며 “파업 없이 꼬박꼬박 정규 근로시간에 일하고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그만큼 추가되는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협력사들은 “무파업은 고용안정 효과도 가져온다”고 말했다. 연간 매출액이 50억 원인 한 부품업체의 임원은 “일이 없을 때도 직원을 해고할 수 없어서 주 2, 3일 근무시키곤 하지만 그럴 때 회사를 나가는 직원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올 초엔 15% 급여 인상을 했고 여름 파업도 없으니 연말 성과급 평가 때도 직원들이 흡족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주력산업팀장은 “완성차의 품질은 중소협력사의 안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며 “완성차 제조사가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중소 협력사에 대한 상생 지원에 더해 자사 노사 관계의 안정화도 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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