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혀서 보면 김여사” vs “여자라고 더 무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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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남녀 500명 ‘여성 운전’ 편견과 항변

남성 절반이 “교통흐름 방해 여자일때 더 화나”
“여성 장점은 안전운행”엔 남녀 모두 공감표시
“거친 도로문화 개선-교통흐름 사전 교육 필요”

《‘1타3피(1대로 3대 주차 공간 차지).’ ‘옷 구경 중이신 김 여사(옷가게 뚫고 들어간 차).’ 인터넷에 떠도는 ‘김 여사’ 비하 사진들이다. 운전자가 여성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쨌든 ‘김 여사’의 소행이란다. ‘김 여사’는 운전이 서툰 여성을 통칭한다.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여성이 소유주인 승용차 대수는 300만 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여성 운전면허소지자는 약 1000만 명으로 전체 운전면허소지자의 38.7%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여성운전자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비호의적이다. 동아일보는 SK엔크린과 함께 남녀 운전자 500명(남 250명, 여 250명)을 대상으로 ‘김 여사’에 대한 시각을 물었다. 또 남녀 운전자, 교통전문가 등 10여 명과 인터뷰를 통해 정말 ‘김 여사’의 운전이 문제인지 인식의 차이인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해 봤다.》
○ 남성 운전자 측 ‘여자일 줄 알았어’


고속도로를 달리던 이수언(가명·33) 씨는 1, 2차로를 나란히 점유한 채 시속 90km의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경차 두 대에 앞이 막혔다. 1차로를 달리는 차에 비켜달라고 상향등 번쩍였지만 허사였다. 한참을 뒤따라 달리다 결국 불법인 줄 알면서도 갓길을 통해 앞질렀다. 백미러를 흘끗 본 이 씨가 혀를 찼다. “역시 여자군!”

남성의 여성운전자에 대한 편견은 어느 정도일까. “앞 차가 서행으로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있을 때 운전자가 여자임을 알면 더 화난다”는 항목에 남성 54.4%는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는 22%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운전을 못하는 여성들에게 위협은 가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상대가 남성이라면 하지 않았을 위협행위를 여성이라서 한 적이 있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답한 남성은 6.8%에 불과했다. 정병길 씨(38·회사원)는 “나도 운전 못하는 남성들을 째려보는 경우가 있는데 여성들은 같은 경우를 당하면 자신이 여성이라 위협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이 운전에 서툰 이유에 대해 남성의 54.4%(이하 복수응답)는 ‘민첩성(빠른 상황 판단과 대응)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중심적 운전(51.2%)’ ‘교통 흐름을 맞추지 못함(44.8%)’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택시운전사 부용근 씨(49)는 “주변을 살펴 흐름을 맞춰야 하는데 여성은 앞만 보고 운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여성 운전자 측 ‘안전운전도 죄?’

최지연(가명·27) 씨는 최근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50대 남성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 남성은 “내 차에 당신 차 범퍼가 닿아 있다. 주차를 이렇게 하면 되느냐. 여자가 차 끌고 다니면 항상 이렇다”며 핀잔을 줬다. 격해진 두 사람은 폐쇄회로(CC)TV 판독을 통해 남성이 후진하다 범퍼가 닿았음을 확인했다. 최 씨는 ‘내가 남자였어도 폭언을 들었을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여성 응답자의 76.4%는 “여자라 무시·협박 받았다”고 답했다. 남성들의 비하·위협 행동은 ‘삿대질을 하거나 빤히 쳐다본다(26.4%)’ ‘경적을 울리거나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린다(24.4%)’ 등이었다. 하지만 여성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조사 대상 남녀 모두 여성 운전자의 상대적 강점은 ‘안전운전’과 ‘서행운전’을 꼽았다. 교통안전공단은 5월 남성이 여성에 비해 교통사고 발생 빈도가 3.3배나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상현 씨(34·여·회사원)는 “안전운전을 답답하다고 하는 게 문제”라며 “여성이 경험 부족으로 운전이 서툴다면 교육받을 기회를 줘야지 손가락질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운전에 서툰 이유에 대해 여성들은 ‘민첩성 부족’을 첫 번째, ‘경험 부족’을 두 번째로 꼽았다. 여성 스스로 남성 운전자에 비해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면은 인정하면서도 운전 경험이 쌓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 교육제도와 사회적 이해가 필요

남녀 운전자의 차이를 인지능력의 차이로 설명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해 12월 독일 보훔 루르대 연구팀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주차하는 데 20초 더 걸린다”며 공간지각능력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교통안전공단 최병호 박사는 “인지능력 차이는 자의적 해석”이라며 “남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기보다 운전 경험이나 지리 정보력 차이가 더 크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남궁성 박사는 “‘김 여사’를 만드는 것은 이해심 부족과 거친 운전문화”라며 “남녀를 불문하고 도로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행위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 위 갈등을 줄이는 데 사전 교육이 유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정빈 씨(25)는 “도로 위에서는 운전자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데 여성이 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이런 부분을 운전면허 과정에서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여성의 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온라인 사이트 ‘핑크드라이브’의 정은란 대표는 “남성 못지않게 운전 잘하는 여성도 많다”며 “여성이 대개 남성에 비해 운전 경험이 짧지만 도로 위에서 당당해지려면 여성 스스로가 도로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이샘물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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