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하철 '라디오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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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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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철도公 라디오 생방송 프로 ‘스마트TV’
가락시장 역장은 게스트로… 서울 조영감님 전화인터뷰

“자, 다음은 성북구 장위동의 ‘조영감’님을 전화로 모시겠습니다. 여보세요?”(DJ)

“응, 나 조영감이에요. 쑥스러워서… 그냥 조영감으로 불러주세요.”

22일 낮 12시. 서울 성동구 용답동 도시철도공사 2층 라디오 스튜디오. 온화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13.2m²(4평)의 스튜디오를 휘감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DJ가 지하철 내 건의사항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 순간 “여보세요?” “잘 안 들려…여보세요?” 전화가 끊겼다. 지상파 라디오였으면 돌발사고쯤 됐겠다. 하지만 여기선 ‘해프닝’ 수준이다. 이곳은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시 도시철도공사의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 ‘스마트TV’ 현장이다.

○ 초대손님은 역장과 동네 승객

“지하철의 ‘라디오 스타’.” 서울지하철 5∼8호선 148개 역사와 인터넷으로 라디오 방
송을 하는 도시철도공사의 ‘스마트TV’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제익 PD, 이석
주 엔지니어, 이날 초대손님인 이재명 가락시장역장, 김희정 DJ, 이형권 DJ. 이들은 역
장과 승객들을 출연시키며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제공 도시철도공사
“지하철의 ‘라디오 스타’.” 서울지하철 5∼8호선 148개 역사와 인터넷으로 라디오 방 송을 하는 도시철도공사의 ‘스마트TV’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제익 PD, 이석 주 엔지니어, 이날 초대손님인 이재명 가락시장역장, 김희정 DJ, 이형권 DJ. 이들은 역 장과 승객들을 출연시키며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제공 도시철도공사
이준익 감독의 2006년 영화 ‘라디오 스타’는 한물간 스타 최곤(박중훈)이 강원 영월군의 한 지방방송국 라디오 방송 DJ를 맡으며 재기에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동네 다방 여종업원, 중국집 아르바이트생 등 출연자들은 동네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전하는 얘기는 톱스타들의 ‘뻔한’ 얘기가 아닌 ‘진솔한’ 얘기라는 데 영화는 방점을 찍는다.

공사 측도 라디오 스타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동네 주민부터 공사 직원 등을 스마트TV에 출연시키고 있다. 스마트TV는 4월 시작해 지금까지 총 70회 방송됐다.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되자 공사 측은 점심 방송 외에 오전(7시), 오후(6시) 등 하루 세 번으로 확대 편성했다. 서울지하철 5∼8호선 148개 전 역사뿐 아니라 ‘네오위즈인터넷’과 업무협약을 맺고 인터넷방송으로도 들을 수 있게 했다.

방송 경험이 별로 없는 직원과 시민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이들이 전하는 에피소드는 ‘날것’이 많다. 방송 1시간 내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날 스튜디오에 출연한 이재명 가락시장역장은 “직장 상사에게 여름휴가 날짜 뺏겨 울상인 친한 승객을 위해 내가 그 회사에 찾아갈까 생각 중”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 역장은 역 안에 생긴 생태공원에 대해서도 홍보 대신 “나무에 물주는 데만 1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이날 스튜디오에 출연한 도봉차량기지팀의 김제세 대리도 업무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가수 김종서 모창을 했다.

○ 위기 대응 채널이 ‘라디오 스타’로

스마트TV는 5∼8호선 전 역사와 인터넷으로 방송된다. 13.2m²의 공간에서 DJ 2명과 엔지니어, PD 1명씩 총 4명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지금은 저녁 방송 DJ 2명이 더 충원됐다. 모두 공사 직원이다.

방송을 하자는 아이디어는 현재 PD이자 3년 차인 오제익 씨가 냈다. 그는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때 역내 방송장비가 모두 불에 타 대피 방송을 할 수 없었던 것을 극복하고자 ‘인터넷 위기 방송’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역내 스크린도어가 생기고 “다소 갑갑하다”는 승객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오 PD는 “위기 때는 인터넷방송을 대피 방송으로, 평상시에는 승객들과 함께 듣는 라디오 채널로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획안을 내고 2개월간 인터넷 회사, 음반사 등을 돌며 방송 개국을 준비했다. DJ도 사내 공모를 통해 뽑았다. 10년간 7호선 기관사로 일하다 DJ로 뽑힌 이형권 씨는 “방송 대본을 매일 DJ가 써야 하기에 신문도 꼼꼼하게 본다”고 전했다.

공사 측은 다음 달부터 전 역사에 대형 스크린 2만 개를 설치해 이 방송을 ‘보이는 라디오’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여성 DJ 김희정 씨는 “라디오 방송 도중 승객들은 ‘방송 잘 들었다’ 같은 개인적인 것부터 ‘역내 에어컨이 작동 안 한다’ 같은 항의 메시지를 보낸다”며 “사소한 얘기 같지만 우리 라디오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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