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때마다 ‘방송계 블랙리스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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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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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혔다”는 논픽션? 픽션?

정연주 KBS사장 취임뒤 유인촌-김동건 프로그램 하차
MB정부 출범 이후엔 윤도현-김미화 “불이익” 주장
정치권의 연예인 정략 이용 연예인의 편향적 발언도 ‘불씨’

방송인 김미화 씨가 6일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다고 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성근 진중권 씨가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며 김 씨를 편들자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홈페이지에 “그렇게 편파방송을 했으면서도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한 것까지는 그렇다 칩시다. 그러나 ‘대한민국 만세!’ 하며 이 나라를 조롱한 것은 두고두고 스스로 책임지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KBS는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한 진중권 씨에 대해서도 법적 조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방송계 ‘블랙리스트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중의 인기를 노린 정치권과 연예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방송계가 몸살을 앓아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정연주 씨가 KBS 사장에 취임한 뒤 유인촌 김동건 씨 등이 프로그램에서 물러났다. 정 사장은 취임 직후 인기 프로그램 ‘역사스페셜’을 폐지했고 4년 반 동안 진행했던 유인촌 씨(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물러났다. 그는 2003년 “역사스페셜이 폐지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마지막 방송 열흘 전에 폐지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역사스페셜의 후속 프로그램은 ‘인물현대사’로 좌편향 논란을 낳았으며 진행은 문성근 씨가 맡았다. 결국 정 사장이 노 정권의 코드에 맞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역사스페셜을 폐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역사스페셜은 2년 만에 ‘HD역사스페셜’로 부활했다.

김동건 아나운서도 당시 18년간 진행한 ‘가요무대’를 떠났다가 7년 만인 올해 5월에 복귀했다. 그는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경질됐다. 그는 최근 “그저 정권이 바뀌고 사장이 교체된 뒤 그렇게 됐다. 얼마 뒤 누군가로부터 ‘우리 입장을 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아무 내색하지 않고 KBS 사장이 주는 감사패를 받아 왔다”고 말했다.

심현섭 씨는 2002년 KBS ‘개그콘서트’의 ‘사바나의 아침’ 코너 등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이었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KBS에서 사라졌다. 그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게 문제가 돼 SBS ‘웃찾사’로 이적했다”며 “그해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에서 개그맨 부문 최우수상에 내정됐다 취소됐다”고 말했다. 가수 설운도 씨도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 홍보단’의 부단장을 맡아 활동했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방송 출연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윤도현 김제동 씨 등이 KBS에서 물러났다. 김 씨는 4년간 진행한 ‘스타 골든벨’에서, 윤 씨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KBS 라디오 프로그램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물러났다. 당시 윤 씨의 소속사는 “YB(윤도현 밴드)의 8집 발매와 곧 이어질 전국투어에 윤도현의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하차를 결정했다”면서도 “지속적으로 윤도현의 하차를 요구해 온 일부 언론의 인신공격적인 발언과 윤도현 및 가족들의 상처 등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왔다.

이처럼 정권에 따라 방송인이나 연예인들이 특정 방송에서 물러나거나 부각되는 현상에 대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송사와 출연진 간의 신뢰가 없다면 이러한 사태가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며 “연예인들은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고 방송사 측도 그에 대해 관용적인 자세를 취해 중장기적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스타들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도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에 대응하기 위한 후보로 민주당에서 김제동 씨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지자 김 씨 측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고 매우 불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일련의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또 이런저런 이유로 김제동이 방송활동에 불이익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정치적 프레임에 가두려 하는 움직임에 (소속사는) 우려를 피력해 왔다”고 말했다.

설운도 씨는 “연예인들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인물을 편파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다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특정 인물을 도와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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