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전 대장간마을 매립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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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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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안되게 경화제-석고 바르고… 한지 1만장 덮고…

경기 군남댐 수몰예정지
삼곶리유적 조사 뒤 매몰
후손에 원형 그대로 전해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발굴단원들이 경기 연천군 삼곶리유적을 매립하기에 앞서 경화 처리된 흙 표면을 한지로 덮고 있다. 사진 제공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발굴단원들이 경기 연천군 삼곶리유적을 매립하기에 앞서 경화 처리된 흙 표면을 한지로 덮고 있다. 사진 제공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8일 오후 경기 연천군 중면 삼곶리유적. 어둑어둑한 하늘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얀 선으로 경계를 친 우묵한 땅바닥에 전지 크기의 한지들이 붙어 있었다. 1월 20일 시작한 삼곶리유적 발굴 조사를 마무리한 뒤 매립 작업을 위한 준비의 하나였다.

이곳은 한국수자원공사가 군남댐을 만들기 위해 주변을 조사하던 도중에 발견돼 원삼국시대인 3세기경 대장간 마을로 확인됐다. 이곳을 발굴한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소장 이희수)는 여러 곳의 대장간을 비롯해 철가루 화로 토기 등을 다량 찾아냈다.

매립 작업은 조사를 끝내고 먼 훗날 후손들이 발굴할 필요가 있을 때 원상태 그대로 전해주기 위한 과정이다.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측은 이곳에 한지를 바르기 전 구들 같은 부분이 습기 때문에 변형되지 않도록 경화제를 바르고 목탄 등 유물이나 벽이 깨지거나 무너지지 않게 깁스하듯 석고를 발랐다. 한지를 바를 때는 촘촘히 붙이지 않고 습기를 투과시키는 ‘숨구멍’을 만들기 위해 정사각형이 아니라 서로 삐뚤삐뚤하게 붙였다. 한지를 바른 뒤 모래를 10∼20cm 두께로 덮고 그 위에 원래 발굴할 때 나온 흙을 2m 높이로 덮었다.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측은 “댐에 물이 차도 유적 형태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곶리유적 조사 지도위원인 한국전통문화학교 배기동 총장은 “한지가 자연스럽게 썩으면서 층이 생기는데, 이게 훗날 위에 덮은 흙과 유적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시가 된다”며 “이 일대에 1만 장쯤 깔았다”고 말했다.

한편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측은 이날 삼곶리유적 발굴품도 여러 점 공개했다. 이 중 가장자리에 복숭아 씨 10여 개를 박은 단야로(鍛冶爐·땅바닥에 흙을 파내고 점토를 쌓아 만든 화로)가 이색 유적이었다. 배 총장은 “귀한 제품인 철기를 생산하기 위해 ‘여성’의 상징인 복숭아를 박아 다산과 풍요를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귀신을 쫓는 벽사((벽,피)邪)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천=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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