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전 기억도 생생 넥타이 色까지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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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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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 검거 기여 ‘최면수사’ 기자가 체험해보니

용의자는 기억 왜곡해 제외
수사협조 피해자에 적용

7일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본보 강경석 기자가 법최면 수사를 담당하는 권일용 경위의 도움을 받아 최면수사 체험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7일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본보 강경석 기자가 법최면 수사를 담당하는 권일용 경위의 도움을 받아 최면수사 체험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양 손바닥에 자석이 붙어 있어 서로 당기고 있다고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법(法)최면실. 기자는 외부와 차단된 조용하고 어두운 방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에서 법최면 수사를 담당하는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권일용 경위는 기자에게 자석을 연상해 보라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가슴 앞으로 내민 기자의 양손이 스르르 서로 맞닿는 게 느껴졌다. 기자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 이후 30분가량 권 경위의 최면 유도에 집중했다.

○ 수사관과의 친밀감 형성이 토대

“자, 이제 홀로 영화관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스크린 안에는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이완된 채 소파 아래로 몸이 꺼지는 기분이 느껴졌다. 두 눈은 감겨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계가 멈추자 10개월 전 면접시험을 치르는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색 넥타이를 매고 있죠?” 평소에 기억나지 않던 사실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핑크색이요.” 기자의 입에서 나지막이 대답이 흘러나왔다. 권 경위가 “면접 당시 가운데 앉아 있던 면접관의 인상착의를 기억하느냐”고 하자 기자는 흰 머리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 이제 다시 시곗바늘이 앞으로 돌기 시작합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눈을 뜹니다.” 권 경위의 말이 끝나자 무거웠던 눈꺼풀이 떠지면서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자가 실제로 체험한 경찰의 법최면 수사는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게끔 도와줬다. 이날 최면을 진행한 권 경위는 “일반인들은 최면 수사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다”며 “무의식 상태에서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뇌파를 수면 직전 순간의 상태로 유도해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최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관과의 친밀감 형성이라고 했다. 실제 본인이 의도적으로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엔 최면 수사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용의자나 피의자의 경우 최면 수사를 시도하지 않는다. 진술에 대한 법적 효력이 없을뿐더러 범행 순간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려 하기 때문이다.

○ 수사 단서가 될 수 있는 진술유도

법최면 수사는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04년부터 법최면 수사기법을 이용해 몽타주를 작성하도록 해, 지금은 몽타주와 실제 용의자 인상의 정확도를 6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법최면 수사는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수사에 활용될 수 있는 진술을 유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권 경위는 말했다. 일반적인 최면과는 다르다는 것. 2년 전 서울에서 발생한 여대생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는 범인의 신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법최면 수사를 활용해 당시 범인들이 나눈 대화를 기억하게 만들어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권 경위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다른 목격자를 확보할 수도 있고, 잘못된 진술로 수사력이 낭비되는 경우를 막을 수도 있다”며 “중요한 것은 범인의 행동을 재구성하는 ‘프로파일링’ 기법과 연계해 수사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법최면 수사의 목적을 설명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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