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용사 잊지 않겠습니다]살아서 온 58인, 당신들도 용사… 악몽 떨쳐내도록 격려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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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 얼굴 떠올라 죄책감”
‘급성 스트레스 장애’ 시달려
사회가 ‘상처’ 보듬어줘야

고 이용상 하사(22)의 어머니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의젓한 아들을 잃었지만 다정한 아들이 하나 생겼다. 이 하사와 함께 천안함에 탔던 생존 장병인 전준영 병장(23)이 친구 어머니의 끼니까지 살뜰히 챙기기 때문이다. 전 병장은 ‘어머니 식사는 하셨습니까.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라는 안부 문자를 이 하사의 어머니에게 자주 보내고 있다.

한때 전 병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생존 장병들의 기자간담회에서 흰색에 줄무늬 환자복을 입고 나온 전 병장은 울음을 삼키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생존 장병 일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전 병장처럼 기운을 차리고 있다. 스스로 악몽과 싸워 이겨낸 덕분이다. 이제 외롭게 상처와 싸우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사지에서 살아온 영웅들에 대해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끔찍한 기억’에 시달려

천안함에서 살아왔지만 생존 장병 일부는 한동안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상담치료 외에 꾸준한 약물치료도 병행했다. 국군수도병원 군의관 김시원 대위는 29일 “생존 장병 58명 중 6명이 급성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고 13명이 고위험군, 17명이 중위험군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최원일 함장도 급성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는 “눈을 감으면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강태영 병장은 “나만 살아서 부모님 만나 즐거울 수 없다”며 가족 면회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제는 생존 장병 대부분이 병상에서 일어났다. 58명 중 56명이 퇴원하고 현재 국군수도병원에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 환자와 갈비뼈 부상을 입은 환자 두 명만 입원해 있다. 사고 순간이 계속 떠올라 정신과 치료를 받는 장병은 “꼭 옆에서 보내고 싶다”며 잠시 퇴원해 이날 영결식에 참가했다.

○ 생존 장병들도 영웅

천안함 침몰 당시 두 동강 난 함수에 남아 탈출했던 생존 장병들의 빛나는 전우애는 전사자 못지않게 영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생존 장병들은 죽을지도 모르는 캄캄한 바다에서 다친 전우를 경비함에 먼저 태워 보내고 구명복을 양보하는 따뜻한 전우애를 발휘했다. 대학생 반성문 씨(23)는 “사고 후 차가운 바다에서 알몸으로 떨면서 협동해 사지를 빠져나온 것도 평소 훈련을 통해 잘 대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니냐”며 “생존 장병들 역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영웅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초기 전사자 가족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전사자 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면담을 통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털어냈다. 전사자 어머니들은 “너희라도 살아와서 고맙다. 너희들은 죄인이 아니다”라며 아들과 똑같은 생존 장병들을 다독였다. 천안함 함장인 최원일 중령에게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다”며 위로주를 따라주기도 했다. 뼈아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를 다시 하나로 통합하고 군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효현 전 국방대 교수(62)는 “순직·전사한 이들뿐만 아니라 또 다른 영웅인 생존 장병들의 수고와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전상(戰傷) 인정 등 제도적인 보완과 더불어 이들이 군이나 사회에서 쓸쓸히 고통받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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