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제복이 존경받는 사회]<2부·上>팍팍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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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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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군생활… 21년된 ‘GoldStar’… ‘빠듯한 가계’와 매일 교전중
해군 권종모원사 통해 들여다본 ‘직업군인의 삶’

세금떼면 月소득 350만원
“군인이라 검소한게 아니라 아끼지 않으면 못버틸 구조”

줄어드는 軍복지비용
4명중 3명은 내집 없어 관사 개선 등은 늘 뒷전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자 낡은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21년 된 냉장고는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상표(GOLDSTAR)가 붙어 있었다. 가스레인지나 세탁기도 10년은 족히 넘어보였다. 아파트 입구에 있던 자동차도 20만 km를 뛴 1997년산 누비라 승용차였다.

16일 찾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항만방어전대 권종모 원사(50)의 관사 모습이다. 1979년 입대해 31년째 복무 중인 그는 경남 진해시 자은동 덕산해군아파트 79m²(약 24평)의 관사에서 살고 있다. 1982년 결혼한 권 원사는 경남 진해, 경북 포항, 전남 목포, 강원 동해 등을 거쳐 현재 20번째로 이사한 집에서 살고 있다. 동사무소에 가면 그동안의 주소지를 담은 3장짜리 주민등록등본을 뗄 수 있을 정도다.

권 원사의 지난해 연봉은 각종 수당을 합쳐 5200여만 원(세전 기준). 소득세, 의료보험, 군인연금, 아들 학자금 대출금 등을 제외하면 한 달 평균 350만 원가량 받는다. 1982년 중사 1호봉 때는 13만5000원, 10년 전엔 월급 230여만 원으로 네 가족 생계를 꾸렸다. 부인 오향숙 씨(50)는 자녀 교육비를 벌기 위해 10년 전부터 일당을 받는 비정규직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오 씨는 “군인 가족이라 검소한 게 아니라 군인 대부분이 이렇게 살지 않으면 살림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힘겨운 삶의 무게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권 원사는 “노래방에 가면 30년 군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양희은 씨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자주 부른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지와 두 아들 ‘제복 가족’  해군 권종모 원사의 부인 오향숙 씨가 16일 경남 진해시 자은동 해군아파트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을 닦고 있다. 권 원사의 큰아들 권영진 씨(26)는 ROTC 출신으로 육군 중위이고, 작은아들 권영모 소위(23)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3월 임관한 군인 가족이다. 진해=최재호 기자
아버지와 두 아들 ‘제복 가족’ 해군 권종모 원사의 부인 오향숙 씨가 16일 경남 진해시 자은동 해군아파트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을 닦고 있다. 권 원사의 큰아들 권영진 씨(26)는 ROTC 출신으로 육군 중위이고, 작은아들 권영모 소위(23)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3월 임관한 군인 가족이다. 진해=최재호 기자
군인은 3,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인사 때면 전국 어디로든 재배치될 수 있기 때문에 이사가 잦을 수밖에 없다. 부모를 따라 전국 곳곳으로 전학을 다녀야 하는 군인 자녀들 역시 ‘아버지가 군인’이라는 이유로 평탄치 않은 학창시절을 겪는다. 잦은 이사는 자녀 교육뿐 아니라 재테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재정적 여유도 없지만 한 곳에 정주(定住)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역을 해도 집 한 채 없는 경우가 많다.

국방부가 올해 처음 공개한 ‘군인복지 실태조사(2008년)’에 따르면 10년 이상 장기복무 군인의 주택보유율은 29.9%에 불과했다. 직업군인 넷 가운데 세 명은 ‘내 집’이 없는 셈이다. 이는 일반국민의 주택보유율(2008년)인 67.5%에 훨씬 못 미친다. 계급별로 차이는 있지만 장군의 주택보유율도 65.1%로 일반인 평균에 못 미친다.

군은 결혼한 군인 가족에게 관사를 제공하지만 상황은 열악하다. 국방부에 따르면 2007년 12월 기준으로 4209채의 관사가 부족하다. 전체 7만574채 가운데 25년 이상 된 관사는 6934채(9.8%)에 이른다. 49.5m²(15평) 이하 관사도 1만9441채로 27%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한 부대에서 근무하는 육군 대위 A 씨는 “결혼하고 2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15평짜리 관사가 나와 최근 집들이를 했다”며 “부엌이 딸려 있는 거실이 너무 좁아서 안방에 있는 침대를 복도로 옮긴 후 안방에서 8명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업군인의 평균 자산도 1억426만 원으로 일반 국민 2억8112만 원의 37.1% 수준에 불과하다. 부채를 뺀 순자산은 9006만 원으로 1억 원이 안 된다. 연간소득 1000만 원 미만의 최하위 소득층(전체 인구의 10.59%)의 자산(1억1935만 원)보다도 적은 것이다.
○ 복지 시스템 개선해야

군인들의 질적인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가 전반적인 복지수준을 높여야 하지만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 노후한 무기체계 교체 등 시급한 문제 때문에 국방 예산은 늘어나는 반면 복지 분야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지난해 국방예산 29조2872억 원 가운데 방위력 개선비는 9조1376억 원으로 31.2%, 복지예산이 포함된 경상운영비는 20조1496억 원으로 68.8%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3년에는 방위력개선비가 전체 국방예산의 38.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정된 국가 예산과 휴전 상태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직업군인에 대한 복지예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며 “자녀교육, 관사, 의료서비스 등에서 현실적인 수준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군인 복지예산은 임금과 급식비가 대부분(61%, 2008년 기준)을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력연구센터장(50)은 “우리 군은 무기체계를 현대화하는 등 ‘하드웨어’에만 국방 예산을 집중 투입해 온 측면이 강하다”며 “군인 교육훈련이나 복지시스템 등 세밀한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군인의 사기진작은 물론이고 진정한 의미의 군 전력 증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진해=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불 끄다 다친 소방관, 자비 치료받기도
공상처리 절차 까다로워…‘소방병원’ 없어 성형 포기


올해 3월 소방관 A 씨(27)는 산불현장에 갔다가 목에 2도 화상을 입었다. 2007년 경찰병원 안에 중앙소방치료센터가 설치됐지만 소방서장이 “뭐 그런 걸 갖고 병원에 가느냐”며 공상(公傷) 처리를 해주지 않아 동네 병원에서 자비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A 씨는 “경찰병원은 눈치도 보이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흉터도 성형수술하고 싶었지만 역시 자비로 부담해야 해 고민중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매년 평균 10여 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400여 명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소속기관장이 인사 불이익을 우려해 공상 처리를 해주지 않거나 소방관이 직접 자비를 들여 치료해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상 소방관’은 훨씬 많다. 비공식적으로는 매년 소방관 2만50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부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소방관들에게는 경찰병원이나 군병원처럼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소방병원’이 절실하다. 현재는 일단 민간병원에 치료비를 낸 뒤 공상을 청구하고, 심사를 거쳐야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한 소방관은 “공상 신청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고, 길게는 몇 달이 걸려 큰 부상이 아니면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정부는 소방관만으로는 적정 진료 수요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은 소방관을 위한 전문치료병원을 지역별로 운영하고 있다. 또 소방서별로 주치의를 지정해 수시로 건강검진을 한다. 뉴욕은 소방관 본인과 가족들에게 ‘평생 의료보장 혜택’도 제공한다. 이승한 국립소방병원추진연구회 회장(48)은 “일반 국민도 같이 이용하면 혜택을 나눌 수 있고 수익성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며 “설립이 어렵다면 국가가 지역 민간병원을 위탁 지정해 지원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군병원과 경찰병원도 여건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군병원에서 소화불량 진단을 받고 2005년 제대 뒤 위암으로 숨진 김웅민 씨(23)와 같이 억울한 죽음도 많다. 당시 의사들은 “내시경만 했어도 살 수 있었다”며 “군의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것도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경찰관도 “경찰병원에서는 진단만 받고 치료는 민간병원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외국과의 급여 비교
1년차 경찰연봉 韓 2065만원 - 美 5107만원


17년 동안 복무한 서울 광진경찰서 박창순 경위(55)의 월급은 기본급 210만여 원에 수당을 합쳐 290만여 원이다. 2년 전 밤샘근무를 하다 쓰러져 50일 동안 입원했을 때는 수당을 받지 못해 기본급만으로 네 식구가 생활했다. 자녀 2명의 대학 학비를 대기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한국 경찰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기로 유명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1년차 경찰의 평균 연봉은 2065만 원으로 미국 워싱턴의 1년차 경찰공무원이 받는 5107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터키(3997만 원)나 폴란드(3441만 원)보다도 뒤처진다. 10년차 평균 연봉 역시 한국은 3247만 원이지만 워싱턴은 7439만 원에 이른다. 워싱턴 경찰은 주 40시간을 근무하지만, 한국 경찰은 평균 56시간을 근무하고, 외근 형사는 70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잦다. 시간당 임금이 워싱턴보다 훨씬 낮은 셈이다. 그러나 시간외수당의 단가는 한국 경찰 경위계급은 시간당 8165원, 워싱턴은 5만4000원 정도다. 경찰청 관계자는 “물가와 경제수준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자료를 분석해 세계 각국의 직업별 임금 정보를 제공하는 ‘www.worldsalaries.org’에 따르면 한국 소방관이 매달 받는 평균 기본급은 2005년 163만 원으로 미국(303만 원)의 53% 정도다. 호주(294만 원), 영국(274만 원)보다도 훨씬 낮다.

군인도 미국과 비교하면 ‘저소득층’ 수준이다. 직업군인으로 2년간 근무한 하사 3호봉의 연 기본급은 1079만 원. 미국 국방부 재무회계본부에 따르면 우리 군의 하사에 해당하는 ‘E-6 3호봉’의 연 기본급은 3290만 원이다. 소위의 연 기본급도 미군은 3657만 원이지만 한국군은 1153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국가마다 국내총생산(GDP) 수준이나 물가가 다르기 때문에 임금 수준을 맞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환산지수(PPP) 환율을 감안해도 우리나라 군인 경찰 소방관의 임금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진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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