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정 4척도 속수무책… 폭발 70분만에 해경보트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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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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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순간 재구성

휴식중 닥친 날벼락
‘꽝’ 충격에 몸 튕겨올라
함장 “폭발직후 기름냄새”

어려웠던 초기대응
90도 기운 선체 물 차올라
높은 파도에 가까이 못가

암흑속 필사의 구조
행정선 가세해 58명 이송
“생존자 함수에 몰려있었다”


26일 밤, 해군 1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은 백령도 서남쪽 해상을 평소처럼 항해 중이었다. 섬과의 거리는 1.8km밖에 되지 않았지만 육지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 달빛도 없는 서해상에서 천안함은 칠흑 같은 어둠과 파도를 헤치고 나갔다.

초속 10m가 넘는 강한 남서풍과 3m의 파도 속에 선체는 몹시 흔들렸지만 함정 안은 평온했다. 배 뒤쪽의 기관부 침실과 앞쪽의 포갑부 침실에는 부사관과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날 당직 근무를 위해 이른 잠에 빠져 있었다.

천안함 마지막 모습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앞부분이 뒤집힌 채 27일 오전 일부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다에 떠 있던 이 함수는 이날 낮 12시경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실종자들이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천안함 함미는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자리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류가 빠르고 물이 매우 탁해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 제공 옹진군청
천안함 마지막 모습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천안함의 앞부분이 뒤집힌 채 27일 오전 일부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다에 떠 있던 이 함수는 이날 낮 12시경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실종자들이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천안함 함미는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자리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류가 빠르고 물이 매우 탁해 수색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 제공 옹진군청

○사고 순간

함장인 최원일 중령 등의 증언에 따르면 오후 9시 반경 “꽝” 하는 폭발음과 충격이 천안함을 강타했다. 당시 선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한 부사관은 자신의 몸이 2∼3m 튕겨나갔다 떨어질 정도였다고 했다. 주변 집기도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이 부사관은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폭발과 함께 전기 공급이 끊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며 “10여 분 동안 문고리를 찾느라 방 안을 더듬고 다녔다. 겨우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천안함은 이미 90도 정도 기울어 물이 차들어 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중령은 폭발 직후 기름 냄새를 맡았다. 5분여 후 함장실을 빠져나온 최 중령의 눈에도 이미 반대쪽의 함미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실 등이 있는 함미 부분은 무거워 선체가 갈라지자마자 그대로 가라앉은 것 같았다. 최 중령이 있던 함수 부분 역시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함교, 전투상황실 등 함정지휘소는 함수 쪽에 있어 장교들은 모두 무사했다. 함수 쪽의 승조원들은 로프와 소화호스 등 주변에 있는 장비를 동원해 선체에 갇힌 동료들을 구해냈다. 그러나 천안함이 가라앉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구조 작업

사고 직후 포 관리담당자가 휴대전화로 2함대 상황반장에게 “현재 배가 기울며 침몰 중이다. 구조해 달라”고 첫 보고를 했다. 2함대 상황실은 오후 9시 36분 인천 해경에 “우리 배가 기울고 있으니 도와 달라”며 협조 요청을 했다. 비슷한 시간 최 중령도 휴대전화로 2함대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대청도 인근에서 야간 경비 중이던 해양경찰대 501함이 현장으로 향했다.

오후 9시 50분경 인천 옹진군의 어업지도선 김원국 선장(48)은 해군에서 긴급수색구조 지원 요청을 받고 선원 6명과 함께 5분 뒤 백령도 용기포항에서 사고현장으로 긴급 출동했다. 오후 10시 20분쯤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대청도에서 출발한 대청면 소속 47t급 행정선과 어업지도선 등 2척도 비슷한 시간에 현장에 닿았다.

그때는 이미 백령도에서 긴급 출동한 해군 참수리 고속정 4척이 사고 지점에 도착해 있었지만 높은 파도 때문에 천안함을 보고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서치라이트만 비추고 있었다.

오후 10시 40분경 현장에 도착한 해경정은 천안함에 다가갈 수 있는 고속단정(고무보트) 2척을 내려 보냈다. 이 중 1척이 501함과 천안함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승조원들을 실어 날랐다. 해경 관계자는 “고무보트에 구조대원들도 타야 하기 때문에 한번에 예닐곱 명만 태워 나를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해경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붕대를 묶고 부목을 대고 있는 등 이미 응급처치를 다 마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천안함은 우현이 기울고 후미가 가라앉은 상태이긴 했지만 함수 윗부분은 수면에 떠 있어 생존자들 모두가 거기에서 구조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청면의 행정선까지 가세해 전체 승조원 104명 중 58명을 구출했지만 나머지 46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 동료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오후 11시 20분경 잠수함 초계용 링스헬기 한 대가 현장에 도착해 조명을 비추며 실종된 승조원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는 승조원을 찾을 수 없었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천안함의 함수 부분은 사고가 일어난 지 두 시간이 지난 오후 11시 반경 침몰했다. 그러나 함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다음 날 낮 12시였다.

○귀환

해경정에 구조된 승조원 중 부상자는 13명. 이 중 2명은 출혈이 심했다. 최 중령과 부함장 등 5명은 해군 고속정으로 옮겨 타 수색임무를 지원하고 나머지 승조원은 현장을 떠났다.

이 중 7명이 27일 오전 1시 대청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김상범 대청면장(48)과 직원 10여 명은 이들을 대청면 보건지소로 이송하는 것을 도왔다. 천안함 승조원들은 머리에 피를 흘리거나 절룩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걸었고 이송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건지소에서 이날 당직을 맡았던 김현수 공중보건의(26)는 “모두 아픈 증세만 얘기할 뿐 이름이나 부상 경위, 사고 당시 상황 등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해경 관계자는 “해군 측에서 구조 당시 ‘생존 승조원들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말고 격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백령도=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백령도=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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