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혁명 현장마다 東亞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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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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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강연 참가 강요→학생들 부상·연행→정치문제화…
당시 이만섭 기자 취재 송고

1960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3면. ‘학원에 자유를 달라”는 제목을 단 머리기사는 대구 고교생 시위 내용을 현장 사진과 함께 자세히 다뤘다.
1960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3면. ‘학원에 자유를 달라”는 제목을 단 머리기사는 대구 고교생 시위 내용을 현장 사진과 함께 자세히 다뤘다.
대구 지역 고교생들의 ‘2·28민주운동’은 당시 동아일보에 자세히 보도됐다. 1960년 2월 28일자 ‘대구에서 시민 20만 명 동원. 여, 선거강연에 참가 강요’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27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린 자유당 강연회에 20만 명가량의 시민이 모였지만 대부분 강제 동원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29일자에도 2·28운동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3면 머리기사로 ‘학원을 정치도구화 말라고 1200명 학생들이 시위-경찰과 충돌로 20여 명 부상, 200여 명 연행됐다가 귀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경북고와 대구고, 경북대사대부고, 경북여고 학생 1200여 명이 경북도청으로 몰려가 ‘신성한 학원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기사에는 자유당 정권이 28일 일요일 수성천변에서 열린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강연회에 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학예회’ 같은 명목으로 휴일 등교를 강요한 것과 함께 학생들이 반발한 이유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 기사들은 모두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취재해 송고했다.

3월 1일자에는 ‘대구학생데모사건 정치문제화’라는 제목을 단 1면 머리기사로 이 사건이 몰고 올 파장을 비중 있게 다뤘다. ‘정계 스냎’이라는 가십난에는 ‘용감한 대구학생에 감탄-강압도 극에 달하면 반발 자초’라는 제목으로 대구 학생들의 시위를 다뤘다. 또 이날 3면에는 대구 학생들이 시위를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4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자세히 보도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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