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교사 편견이 수학 약한 여학생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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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시카고대 연구팀
“못한다” 소리 자꾸 들으면 학기 끝날때 성적 안좋아

■ 서울교대 배종수 교수
“한국도 여고생때 포기 많아… 그들이 교사되면 악순환”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학에 약하다는 건 상식이다.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리영역 1등급을 받은 학생을 분석해 보면 남학생이 62%, 여학생이 38%로 차이가 크다. 적어도 수능에서 남학생이 수학을 더 잘한다는 건 사실이다.

이전에는 이런 차이가 생물학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우세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정경아 박사가 2005년 중고교 수학교사 4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8.8%(332명)가 ‘(수학 실력 차이는) 선천적 성차(性差) 때문으로 교사의 노력이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수전 레빈 교수 연구팀의 생각은 다르다. 연구팀은 26일 국립과학아카데미회보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여학생이 수학에 약한 건 사회 문화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여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여교사들로부터 남학생보다 수학을 못한다는 소리를 자꾸 들으면서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학을 더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에 여교사가 많아 이런 현상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공립 초등학교 5곳에서 초등학교 1, 2학년 여학생 65명, 남학생 52명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17명도 실험 대상이었다. 교사들은 모두 여교사였다. 연구팀은 새 학년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학생들 수학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아봤다. 교사들을 상대로는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측정 지표로 삼았다.

실험 결과 ‘수학에 자신이 없다’고 답한 교사 밑에서 공부한 여학생들은 수학 성적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 남학생들은 이런 교사 밑에서 공부해도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여학생들은 또 “수학은 남학생이, 읽기는 여학생이 잘한다”는 명제에 공감하는 비율도 높았다. 연구팀은 “여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수학을 가르치려면 실력뿐 아니라 수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종수 서울교대 교수(수학교육)는 “우리나라도 초등학교 교사 4명 중 3명(74.6%)이 여교사라 이 문제를 짚을 필요가 있다. 고교 1, 2학년만 되면 여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교사가 돼 수학을 가르치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수학을 암기 과목으로 생각하는 바람에 논리적 사고력이 아닌 지구력이 수학 성적을 가른다. 대체로 남학생 성적이 높은 건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배 교수는 올해부터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가 달라지면 풍토가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새 수학 교과서는 문제 풀이보다 개념 위주다. 이를테면 예전에는 시험에서 ‘3+2×4’의 답을 물었다면 이제는 ‘3+2×4=11’이라는 답을 주고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바뀌는 것이다. 배 교수는 “예전에는 그저 ‘곱하기를 먼저 하는 게 약속’이라고 가르쳤지만 이제 논리적인 접근을 가르치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미국 빌라노바대 연구팀은 이달 초 미국심리학회보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69개국 청소년 49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남녀평등이 많이 진행된 국가일수록 수학 실력 차이가 적다고 결론 내렸다. 한국은 성적(性的) 차이가 큰 나라에 속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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