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수준별 수업 6개월만 들으면 ‘영어로 수업’ 귀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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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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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국제중 통해본 국제중 1년 생활

《2009년은 서울시내 국제중 개교 원년이었다. 국제중은 올 한 해 영어토론대회, 학력경시대회, 글쓰기 대회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성과를 드러냈다. 하지만 귀족학교 논란과 함께 정원 20%를 뽑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적응을 잘할 수 있느냐는 우려는 여전하다. 국제중의 1년 생활을 대원국제중을 통해 알아봤다.》

영어로만 말하기-토론대회로 발표력 쑥쑥
사교육 받지 않아도 성적 올릴 기회 많아
캠프비용 만만찮아… 고입 내신불리 각오해야


○ “월요일엔 영어만”

대원국제중 학생의 월요일 아침은 제비뽑기로 시작한다. 하루 동안 ‘감시’할 대상을 뽑는 것이다. 월요일은 모든 학생이 영어로만 말해야 한다. 누가 자기를 감시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수로라도 우리말을 썼다가는 어느새 친구가 다가와 “I got you!(잡았다)”라며 한국말을 썼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요구한다. 걸리면 영시를 2편 외워야 한다. 채진균 영어교사는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영어로 말하곤 하는데 자신 없는 아이들은 그러지 못했다”며 “월요일에 영어로만 말하라고 멍석을 깔아 줬더니 잘 못하는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일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전교생이 1박 2일 독서캠프를 떠났다. 각 반을 수준별로 3개 그룹으로 나눠 각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나눠주고 자신이 읽은 책을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게 했다. 김일형 교장은 이 캠프를 ‘록인(Lock in) 캠프’라고 부른다. 책만 읽을 수 있는 장소에 아이들을 ‘가둬 두고’ 독서삼매에 빠지도록 한다는 뜻이다.

캠프에 이어 열린 교내 영어토론대회를 본 교사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어 담당이 아닌 교사들은 “아이들의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16개 조 70여 명의 학생이 ‘조화가 다양성보다 중요한가’ ‘영어는 꼭 필요한가’ 등의 주제를 놓고 찬반으로 나눠 열띤 토론을 벌였다.

○ “6개월이면 영어 수업 듣는다”

채 교사는 “입학할 때부터 모든 아이의 영어 실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어로 타과목 수업을 진행하면 한 반에 절반은 입을 열지 못했고 수업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모든 학생이 ‘영어로 수업’을 어렵지 않게 받는다는 것이 교사들의 반응이다. 채 교사는 “6개월이면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서 “단, 방과 후 수업을 열심히 들었을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방과 후 영어과목 수업의 특징은 수준별 9개 반으로 세분했다는 점이다. 한 학년이 5개 반이기 때문에 방과 후 수업은 한반의 절반 정도 인원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영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영어집중반인 EIL(English Intensive Learning)반을 수강한다. 또 인터넷을 통해 화상 영어 대화를 하면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운다.

사교육을 받지 않아 상대적으로 영어에 친숙하지 않았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합격생들도 EIL반에서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실제로 EIL반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학생들의 입학 당시 순위는 평균 128등이었다. 하지만 1학기 기말고사에서는 112등, 2학기 기말고사는 100등으로 점차 오르고 있다. 교사들은 “영어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모인 국제중에서 이 정도로 성적이 올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입학 당시 97등이었던 한 학생은 EIL반에서 공부한 뒤 전교 11등까지 영어성적이 올라 화제가 됐다.

○ 학비 부담, 내신 불리는 고려해야

지난해 여름 국제중 학생들은 대원외고에서 태국 방콕에 설립한 브롬스그로브 국제학교로 캠프를 떠났다. 현지 교사들과 어울려 축구, 수영 등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참가비가 200여만 원으로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학생들은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야 참여할 수 있었다.

국제중 학비는 3개월에 120만 원으로 일반 중학교의 3배 수준이다. 여기에 급식비, 방과 후 수업비, 교통비 등을 더하면 한 달에 최소 60만 원 이상이다. 각종 캠프나 교외 활동이 일반 중학교보다 많기 때문에 추가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일주일에 3번은 오후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때문에 학원비는 다소 줄어든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경쟁이 치열한 만큼 대부분 학생들은 주말에 학원을 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올해 대원국제중은 각종 상을 휩쓸며 두각을 나타냈다. 제1회 KDF 영어토론대회에서 ‘베스트 스피커’상 수상, 유네스코 말하기·쓰기 대회 최우수 학교, 성균관대 주최 전국 영어·수학 학력경시대회에서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는 등 말 그대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빛나는 성과이지만 그만큼 상위권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 내신성적을 잘 받기가 어렵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내신성적 상위 50%만 지원할 수 있는 자율형사립고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면 국제중 입학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고교 입시에서 일반 중학교와 특성화중학교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는 국제중 설립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대로라면 국제중 학생은 일반 중학교와 동등한 기준을 적용받게 돼 내신성적이 불리한 상태에서 특목고, 자율고, 자립형사립고 입시를 치러야 한다. 외국어고도 올해부터 영어성적 내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불리함을 안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김 교장은 “부산 지역은 특성화중학교에 비교내신을 적용하는 등 다른 선발 기준을 적용해주고 있다”며 “수월성 교육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이어지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입시 전문가들은 특목고, 자사고 입시에서 확대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가 국제중 학생들이 내신의 불리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중학교에서 이미 다양한 활동을 하고 차별화된 교육을 받은 국제중 학생들에게 입학사정관제는 ‘일종의 혜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전문가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외국어고에게는 국제중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인재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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