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신약 모델은 ‘천연물 의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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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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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귀로 치매치료제… 쑥으로 위염 치료제…

산두근(콩과에 속하는 월남괴의 뿌리와 뿌리줄기)은 한의학에서 인후통, 편도샘염에 쓰이는 약재다. SK케미칼은 산두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천식 치료제를 만들어 그 안전성을 확인하는 2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환인제약은 참당귀 추출물을 이용해 알츠하이머 치매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적절한 투약 용량을 결정하는 임상시험 3상 단계라 상품화될 가능성이 높다.

산두근 당귀와 같이 전통의학에 기반을 둔 천연물의약품이 한국형 신약 개발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현재 임상시험을 승인한 천연물의약품은 모두 36가지.

신약 개발 연구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국내 제약업체들은 최근 합성 신약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임상 정보가 축적된 전통 의학을 활용할 수 있는 천연물의약품 개발에 잇따라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14조5000억 원으로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매출액 56조 원의 4분의 1 수준. 국내 제약사들은 그동안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 생산에 치중해왔다. 조용백 환인제약 중앙연구소장은 “다국적 제약사 한 곳의 연구 인력이 1만 명 정도로 한국 제약업계 전체 연구 인력보다 많다”며 “신약 개발 경쟁에 뛰어들려면 천연물의약품과 같은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엽(약쑥) 추출 물질로 만든 위염치료제 ‘스티렌’(동아제약)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동아제약은 스티렌 개발에 9년간 180억 원을 투자했다. 2002년 출시 이후 스티렌의 누적 매출액은 2351억 원이고 지난해 매출은 85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에 평균 14.2년, 투자비용으로 8억8000만 달러(약 1조 원)가 드는 것에 비하면 57분의 1 수준의 투자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국내 제약사가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이 평균 423억 원인 것과 비교해도 초기 비용이 적게 들었다.

강신정 식약청 생약제제과장은 “천연물의약품은 ‘동의보감’ 등 전통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신약 성분 물질을 찾아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며 “신약 물질을 발견해서 동물 실험으로 독성을 검증하는 단계를 통과할 확률은 15% 남짓에 불과한데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안전성이 입증된 천연물을 활용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천연물의약품 개발의 활성화를 위해선 채취 시기와 장소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가 주최한 ‘천연물의약품의 미래 개발 전략 심포지엄’에서 이봉용 SK케미칼 생명과학연구소장은 “천연물의약품을 재료 채취부터 생산까지 표준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천연물의약품 연구에 대한 정부의 투자 역시 소극적이다. 올해 천연물의약품과 관련한 정부 지원액은 12억7300만 원으로 지난해의 절반이며 개량신약의 20억2900만 원보다도 적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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