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의 대상… 권력의 상징… 민중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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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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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민화 속 호랑이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왼쪽)와 18세기 심사정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맹호도.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왼쪽)와 18세기 심사정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맹호도.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인(庚寅)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오는 백호(白虎)의 해다.

호랑이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친구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등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는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 호랑이는 영물로 여겨 신격화하기도 했다. 신화와 민화, 속담을 통해 호랑이의 의미를 정리했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도 등장한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21일 만에 사람이 되지만 호랑이는 고통을 참지 못해 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김종대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조상은 곰이지만 신화는 비유와 상징을 담는다”며 “당시 한반도에 곰을 숭배하는 종족과 호랑이를 받드는 종족이 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제호이위신(祭虎以爲神)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호랑이를 신으로 섬긴다’는 뜻으로, 당시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왕건의 6대조인 성골장군 호경이 여산신(女山神)인 호랑이와 부부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호랑이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호랑이와 곶감’ ‘꼬리로 물고기 잡는 호랑이’ 등 민담에는 어수룩한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민중이 권력을 희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민속학자인 최인학 인하대 명예교수는 책 ‘한국 민속문화의 탐구’에서 설화 속의 호랑이를 네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보은형’으로, 호랑이가 목구멍에 걸린 비녀를 꺼내준 청년을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둘째는 ‘호식(虎食)형’으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인간 이야기, 혹은 먹힐 위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있다. 셋째는 ‘우둔형’으로 작은 동물이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것이다. 넷째는 호랑이가 인간으로, 혹은 인간이 호랑이로 변신하는 이야기인 ‘변신형’이다.

민화에서는 호랑이가 주술적 의미로 많이 쓰였다. 작호도(鵲虎圖)에는 까치와 소나무가 호랑이와 함께 등장한다. 길조인 까치와 무병장수를 나타내는 소나무, 여기에 호랑이까지 그려 잡귀를 쫓아내고 집안의 태평을 기원하는 복합적 의미를 담았다.

돌연변이인 백호는 흰 사슴, 흰 꿩처럼 영물이었다. 음양오행설을 표현한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도(四神圖)에서 청룡, 주작, 현무와 함께 등장하는 백호는 서쪽을 수호하고, 봄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사찰 산신각의 문과 벽, 산신도에도 백호를 그렸다.

호랑이에 얽힌 속담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호랑이 보고 창구멍 막기(위험이 눈앞에 닥쳐서야 서둘러 미봉책을 씀) △호랑이에게 개를 꾸어 준다(한번 그 손에 들어가면 도저히 되찾을 가망이 없는 경우) △범 가는 데 바람 간다(언제나 떨어지지 않고 같이 다님) 등이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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