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댓글문화가 열었다… 서울 명동서 ‘삼겹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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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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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리플로 뽑아주면…”
공약내건 누리꾼이 주최
英선 특정曲 차트1위 만들어

고기 굽고… 탬버린 치고
자신의 댓글을 베스트리플로 만들어주면 명동에서 삼겹살을 굽겠다고 했던 김성근 씨(앞쪽 앉은 사람)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기업은행 뒤 공터에서 100여 명의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실제로 삼겹살을 굽고 있다. “노래를 부르겠다” “탬버린을 치겠다”며 함께 댓글을 남긴 두 사람도 이날 무대에 올라가 약속을 지켰다. 김재명 기자
고기 굽고… 탬버린 치고
자신의 댓글을 베스트리플로 만들어주면 명동에서 삼겹살을 굽겠다고 했던 김성근 씨(앞쪽 앉은 사람)가 26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기업은행 뒤 공터에서 100여 명의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실제로 삼겹살을 굽고 있다. “노래를 부르겠다” “탬버린을 치겠다”며 함께 댓글을 남긴 두 사람도 이날 무대에 올라가 약속을 지켰다. 김재명 기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삼겹살을 굽게 될 줄 몰랐어요.”

인천에 사는 직장인 김성근 씨(26)가 26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기업은행 뒤 작은 공터에 와서 삼겹살을 구운 것은 단 한 줄의 댓글 때문이다. 김 씨는 이달 초 포털사이트인 네이트의 한 뉴스 기사에 “제 댓글이 ‘베플(베스트 리플)’이 된다면 명동 한복판에서 혼자 삼겹살을 굽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본보 12월 26일자 11면 참조
“서울 명동 거리서 오늘 삼겹살 굽겠다”


약 2600명의 누리꾼은 김 씨의 댓글 외에 옆에서 노래하겠다는 댓글과 탬버린을 치겠다는 것까지 추천을 해 ‘베플’로 뽑았다. ‘베플’의 주인공 세 명은 이날 삼겹살과 탬버린을 들고 실제로 명동 인근에 나타났다.

○ 서울에선 삼겹살 굽고, 영국에선 해체 밴드 재결합시키고


이날 현장에 나타난 김 씨는 흰색 후드티셔츠만 입은 채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삼겹살을 구웠다. 함께 등장한 두 명의 남자는 탬버린을 흔들며 김수희의 ‘남행열차’ 같은 트로트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세 명은 이날 처음 만난 사이. 한 명은 멀리 대구에서 왔다고 한다. 김 씨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지만 뿌듯하다”고 답했다.

영하 8도의 추운 날씨였지만 관객 100여 명은 적극적이었다. 저마다 폰카(휴대전화 카메라), 디카(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고 이들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학생 심민경 씨(21·여)는 “온라인에서 장난처럼 얘기한 것들이 현실에서 실행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한 고등학생은 “뭔가 바보 같기도 하지만 직접 눈으로 봤다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990년대 ‘뉴 메틀’ 장르를 이끈 록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이 17년 전 발표한 대표곡 ‘킬링 인 더 네임’으로 20일자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오른 것. 이 밴드가 부활한 것은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RATM의 팬인 한 누리꾼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영국 싱글차트 1위가 4년째 아이돌 가수인 게 싫다는 댓글을 달았고, 이것이 꼬리를 물면서 ‘RATM을 1위로 올려보자’는 의견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이에 RATM의 기타리스트인 톰 모렐로는 “차트 1위를 하면 밴드를 재결성해 콘서트를 열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속 희망사항은 현실이 됐다. 팬들은 온라인 음원 다운로드 건수가 차트 성적에 반영된다는 것을 알고 ‘아이튠스’에서 RATM의 ‘킬링 인 더 네임’ MP3 파일을 내려받았다. 결국 이 곡은 5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지난주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 온라인 속 불가능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질 때… 행동 댓글 놀이

온라인 댓글 문화가 국내에 등장한 지 10년째.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선 ‘선거 공약’ 형태의 댓글을 남기고 오프라인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유행이다. 누리꾼들은 온라인 속 장난 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까 하는 의아함을 실제로 확인하며 즐거움을 찾는 셈. 댓글의 내용을 실천하는 누리꾼과 이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다수가 함께 소통하는 새로운 놀이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행동 댓글’이다.

행동 댓글 놀이를 즐기는 누리꾼들은 과거 2002 한일 월드컵 때나 촛불집회처럼 특정 의도를 띠지 않는다. 즐거우면 목적이 없어도 모일 수 있다는 것. 이들은 ‘가상공간’인 온라인 생활이 실제 삶과 다르다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사회학)는 “인터넷이 이해관계 없이도 수많은 사람의 뜻을 모으고, 이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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