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년 전엔 숲 잃고 이번엔 어른들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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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빠진 柳林마을

유림마을 주민들이 사라진 유림숲을 그리워하며 2002년 5월에 세운 ‘마을수호 유림 신조비’. 경주=이권효 기자
유림마을 주민들이 사라진 유림숲을 그리워하며 2002년 5월에 세운 ‘마을수호 유림 신조비’. 경주=이권효 기자
“아! 무상한 세월이여. 그 풍성하던 유림숲의 정경이여. 유구한 역사 속에 현존하는 우리들과 영욕을 같이하던 우리 유림이여. 삭막한 우리들 가슴에 초라하게 상처 받은 이 터 위에 싱그럽던 옛 모습으로 다시 소생하소서.”

노인 17명이 참사를 당한 경북 경주시 황성동 유림(柳林)마을 주민들은 2002년 5월 마을 앞 형산강변에 높이 2m인 ‘마을수호 유림 신조비’를 세웠다. 수백 년 된 울창한 숲이 10여 년 전 마을 앞 강변을 따라 생긴 넓은 도로 때문에 사라진 아쉬움을 담은 비석이다. 비문의 마지막 문장 끝에는 글을 지은 최영원(73) 박병룡 씨(79)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다. 유림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두 사람은 이번 참사로 함께 목숨을 잃었다. 유림노인회 회장인 최 씨의 부인 이금자 씨(68)도 함께 변을 당했다.

비문에는 유림마을 주민들이 유림숲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잘 드러나 있다.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 같던 유림숲. 현대화의 답답한 물결이 할퀴고 간 초라해진 지금의 숲을 바라보는 아쉽고 그리운 정에 가슴 저미는 감회를 금할 길 없다…수백 년 된 팽나무, 왕버들, 회나무, 녹개나무가 2만5000m²였고 강에는 황어와 은어, 연어가 철따라 오르고 다슬기는 지천으로 널렸다. 소달구지에 실어온 음식을 먹으며 경주시민들이 즐기던 숲이었다.’

포항 방면으로 시원하게 뚫린 강변도로에 ‘유림마을’을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유림숲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지금은 조그만 언덕에 새로 만든 비석만이 옛 모습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80여 가구 중 마지막으로 남았던 20여 가구도 2년 전 허문 뒤 현재 아파트를 짓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문화재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음식을 배달하고 돌아가던 이 마을 공영석 씨(50)가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워놓고 비석 쪽으로 와서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공 씨는 “최영원 어른은 오랫동안 통장을 맡으면서 마을을 위해 참 많은 일을 했다. 사고 나던 아침에도 만나 인사를 드렸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비석에서 강변을 따라 100여 m 떨어진 곳에는 ‘유림 제단’이 있다. 비록 숲은 사라졌지만 마을주민들의 마음에는 살아있는 유림숲을 그리며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모시던 장소다. 제단 앞에는 한그루 신목(神木)이 서 있다. 마을 총무 손진생 씨(62)는 “어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모두 모여 장례를 도왔는데 합동장례를 지내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한꺼번에 마을 어른들이 유림을 떠나 남아있는 주민 모두 상주(喪主)가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경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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