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섬마을 어르신들 시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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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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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사량도 능양마을 주민들, 19일 삶의 애환 담은 시-그림-노래 발표

신랑 구경은 하늘의 별따기
어쩌다 본 하늘이 아들들이 되었다
욕도 바람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큰 바람둥이도,
작은 바람둥이 남편도 가 버렸다
―송영자 할머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몰래 고구마 먹을 때
서러운 눈물이 이불을 적셨고
이불의 얼룩 자국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에 비할까
―장석순 할머니
경남 통영시 사량도 능양마을 주민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단장한 뒤 붙인 서화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제공 극단 벅수골
경남 통영시 사량도 능양마을 주민들이 컨테이너 박스를 단장한 뒤 붙인 서화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제공 극단 벅수골
‘신랑 구경은 하늘의 별따기/어쩌다 본 하늘이 아들들이 되었다/욕도 바람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큰 바람둥이도, 작은 바람둥이 남편도 가 버렸다’
경남 통영시 사량도 아랫섬 능양마을에 사는 송영자 할머니(80)가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며 지은 시 ‘미운 정(情)도 정인가 보다’ 일부다. 송 할머니를 비롯한 이 마을 주민 20여 명이 인생사와 마을을 소재로 창작한 시화(詩畵)와 노래를 발표한다. 19일 낮 12시 반부터 마을 앞 광장에서 마련되는 ‘섬 마을에 웃음꽃이 활짝 피네’에서는 시 낭송과 시극, 창작곡 발표 등이 1시간 반 동안 이어진다.

이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올 9월부터 노인회관에서 모여 시와 그림, 노래를 공부했다. 통영 연극단인 ‘극단 벅수골’(대표 장창석)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하는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시범사업에 ‘섬 마을에 웃음꽃이 활짝 피네’를 신청해 선정되고부터. 벅수골 단원들은 매주 목, 금요일 오후 능양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지도했다. 단원들은 또 마을 앞 바닷가에 방치돼 있던 냉동 컨테이너 박스 20개도 예쁘게 색칠을 하고 시화를 붙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몰래 고구마 먹을 때/서러운 눈물이 이불을 적셨고/이불의 얼룩 자국은/가슴에 맺힌 응어리에 비할까’ 장석순 할머니(80)가 지은 ‘열일곱 소녀’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꽃다운 나이에 섬마을로 시집와 힘들게 살았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장중석 할아버지(74)는 시극 ‘십오야 밝은 달’ 마지막 장면에서 “청춘을 돌려받지 못하고 하늘로 간 친구들, 바다에 떠 있는 보름달 속에 먼저 간 친구 얼굴이 새겨진다”고 추억한다.

벅수골 제상아 사무국장은 “50차례 순회공연을 다닌 섬마을 가운데 능양마을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가장 컸다”며 “발표회를 계기로 마을에 활력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벅수골 055-645-6379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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