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사직단을 복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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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조선 태조 이성계와 개국공신 정도전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한양의 가장 중요한 구성 원리는 ‘좌묘우사(左廟右社)’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남산을 안산으로, 낙산을 좌청룡으로, 인왕산을 우백호로 하는 내사산(內四山)의 교차 축에 정궁인 경복궁을 두고 좌에 종묘, 우에 사직을 두는 형식이다.

종묘사직이란 말은 한마디로 조선왕조 자체를 의미하는 일반명사이기도 하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왕조를 능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못된 짓을 했다. 그중 잘 알려진 것이 종묘와 창경궁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내 종묘의 지기를 차단한 일이다.

또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사실은 사직단을 사직공원으로 바꾸어 개방한 것이다. 공원으로 일반에 공개한다는 미명하에 신성한 하늘의 제단에 아무나 개를 끌고 들어와 대소변을 보게 만들었다.

종묘와 사직은 항상 둘이 함께 언급되는 국가 최고 의전시설이다. 종묘는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고, 사직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인 만큼 사직이 한 단계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곳에서 1년에 네 차례 임금이 직접 제주가 되어 땅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하는 대제사(大祭祀)와 풍년을 비는 선농(先農), 좋은 베 짜기를 비는 선잠(先蠶), 좋은 기후를 바라는 우단(雩壇)에 제사하는 중제사(中祭祀)가 있었다.

수시로 기곡제(祈穀祭)와 기우제(祈雨祭)도 지냈다. 종묘가 신비스럽게 아름다운 것 이상으로 사직단은 더욱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날 종묘는 한국 전통건축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사직단은 제단만 남은 채 주변 부속 건물들은 모두 소실되고 잡다한 건물과 시설이 들어차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한시바삐 사직단에 원래 있던 임금의 제사길, 준비실, 목욕실, 음식준비를 위한 찬방, 제기 창고, 근위 경호대의 숙소, 그리고 제사를 주관하던 사직서(社稷署) 등 종묘보다도 크고 많았던 주변 시설들을 제 모습대로 복원해야 한다. 사직제례 의식과 제례음악도 복원해 종묘 이상 가는 아름다운 건축과 문화적 자부심 하나를 더 되찾아야 한다.

한양 성곽으로 둘러싸인 역사도시의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사실대로 후대에 알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서울시의 구상대로 한양도성 구도심 전체를 유네스코에 올리자는 시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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