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방역 시스템 믿어도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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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사망 7세 어린이,
두차례 간이검사 ‘음성’만 믿고 입원후 3일간 항바이러스제 투여 안해

16일 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일곱 살짜리 소년이 사망했다. 폐렴 증세로 지난달 28일 입원한 지 19일 만이었다.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는 ‘신종 플루로 인한 사망’이라고 발표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A 군은 사망 당일 아침만 해도 ‘닌텐도’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나뿐인 자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기침과 발열 증상을 보인 A 군이 경기 포천시 집 근처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달 25일 오후. A 군의 열이 오르자 부모는 바로 병원을 찾았다. 복지부가 A 군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면서 고위험군이 아니라고 했지만 A 군은 뇌병변 6급이었다. 처음에 의사는 “감기 기운 같다”고 했다. 부모는 “열이 오르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귀가했다. 26일 새벽 아이의 체온이 37.8도까지 올라갔고, 같은 병원 응급실을 찾아 당직의사로부터 신종 플루 간이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음성 판정. 의사는 해열제를 처방해 주며 “주말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되면 오라”고 말했다.

주말엔 잠깐 상태가 나아지는 듯했다. 28일 월요일에는 손을 흔들며 학교도 갔다. 하지만 오전 11시 반경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의 열이 심각하니 데려가라는 것. 부모는 처음 찾았던 병원에 가서 소견서를 받아 의정부시의 큰 병원에 입원시켰다. 정부에서 지정한 신종 플루 거점병원이었다. 이 병원에서 다시 한 번 신종 플루 간이검사가 이뤄졌다. 역시 음성 판정. 의료진도 음성 판정이 나오자 입원 초기 3일간은 적극적인 치료를 전혀 하지 않았다. 폐렴이라는 초기 진단에 따라 폐렴 약이 투여됐다. 부모는 불안하긴 했지만 신종 플루가 아니라고 하니 병원의 조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간이검사 진단 정확성 50%밖에 안돼

하지만 아이의 열은 심상치 않았다.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다 결국 10월 1일부터 항바이러스제가 처방됐고 정밀검사(PCR·유전자검사)로 다시 한 번 신종 플루 검사를 했다. 나흘 뒤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이 나왔다. 앞선 두 차례 모두 간이검사(신속항원검사)여서 오류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는 게 뒤늦은 설명이었다. 신속항원검사는 오류가 많아 보건당국은 9월 말부터 이 검사를 배제하도록 일선 병원에 지침을 내렸지만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병원에서는 여전히 신속항원검사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 신종 플루에 걸려도 이를 맞힐 확률이 50%밖에 안 되는 간이검사를 두 번 하면서도 “정밀검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묻는 의사는 없었다. “검사 당시에 그런 설명이 전혀 없는 데다 두 번이나 음성 판정에 나오니 단순 폐렴이라 생각했죠. 누가 이런 부분까지 알았겠습니까?”

A 군의 병세는 16일 오후 들어 급격히 나빠졌다. 다급해진 부모는 A 군을 119구급차에 태워 서울시내 대형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도착 후 한 시간 넘게 이뤄진 심폐소생술에도 아이는 이날 밤 결국 숨졌다. 아이의 거짓말 같은 죽음 후 부모는 ‘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A 군이 신종 플루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4일 같은 반 친구가 신종 플루에 걸렸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이 신종 플루에 걸린 것만 미리 알려주었다면 입원시킬 때 그 사실을 의사에게 알리고 좀 더 철저한 치료를 요구했을 텐데….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가슴이 미어집니다.”

22일 경기 포천시에서 만난 A 군의 부모는 “우리 아이를 빼앗아간 건 신종 플루가 아니라 허술한 국내 의료시스템”이라며 “다른 아이에게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바로잡습니다 ▼
◇위 기사에서는 9월 25일 고열로 귀가 조치한 A군의 상태가 호전되어 28일 등교했다고 보도했으나 25일 이후 A군은 등교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바로 잡습니다. 또 학교측은 같은 반 친구가 양성반응을 보인 것을 학부모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정밀검사가 아닌 간이검사 결과였기 때문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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