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재판과 시짓기는 언어로 설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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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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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고종주 부장판사 두번째 시집 펴내

‘척박한 이 땅의 가슴으로 혼자 남은 내게 다시 코스모스가 피고/향기로운 그들의 허리를 돌아 그리움처럼 가을이 밀려오는데/(중략)/그러니, 사랑하는 딸아, 너는 부디 그때까지만이라도/이 아빠의 뜨거운 심장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넘어지는 이 아빠를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1-먼저 간 딸을 위한 어느 가을날의 만가)

‘법관 시인’인 부산지법 민사1부 고종주 부장판사(61·사법시험 22회·사진)가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위로, 신에 대한 사랑 등을 표현한 시집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부산대 출판부)를 펴냈다. 2004년 ‘우리 것이 아닌 사랑’에 이어 두 번째 시집. 대구지방변호사협회지인 ‘형평과 정의’에 실린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1, 2, 3’ 등 시 77편을 실었다.

경남 남해 출신인 그는 50대 중반이던 2003년 8월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전엔 시와 거리가 멀었다. 고향에서 부산행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벼락처럼’ 시상이 떠올라 시작(詩作)을 한 늦깎이 시인. 그는 “시는 삶에 있어 크나큰 위로이자 은총”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과 시 짓기는 언어로 설득과 감동을 이끌어내고, 법관과 시인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이해와 표현 과정을 살핀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초 부부 사이 강간죄 인정 및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성폭행을 강간죄로 인정하는 두 가지 판결로 관심을 끌었다. 재판에서 그는 “사법 본령은 삶의 현장과 소통하며 사건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와 애환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며 “부부 사이의 성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신에게서 부여받은 성스럽고 신비로운 선물”이라고 밝혔다.

고 부장판사는 부산대 법대 재학 중 개천예술제에서 시(詩)로 입선한 경력도 있다. 첫 번째 시집에서는 아내와 딸, 이웃, 자연과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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