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공무원 노조의 ‘부적절한 결합’

  • 입력 2009년 10월 5일 2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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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가입을 앞당긴 것은 이명박 정부입니다. 출범하자마자 공무원을 개혁의 걸림돌로 비하하며 구조조정이다 뭐다 사기를 떨어뜨리고, 보수도 2년 연속 동결했습니다.”

이충재 전국민주공무원노조(민공노) 사무처장은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법원공무원노조와의 조직통합에 이어 민노총에 가입하게 된 원인을 정부가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2월에 공식 출범할 통합공무원노조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필자가 “공무원은 신분보장 연금혜택과 함께 국민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 국민의 심부름꾼인데, 행동에 절제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대뜸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정부로선 개혁 필요성이 있었는지 몰라도 우리에겐 개악(改惡)이었다. 과거 정권은 공무원들에게 잘해줬는데, 보수정권이 되레 공무원을 뽑아내야 할 전봇대로 취급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민노총이 총파업이나 촛불시위 같은 정치투쟁에 동참을 요구할 경우 어떡할 것인지에 대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단체행동권 행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파업을 하는 것은 노조원들이 원치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지난달 공무원 노조의 민노총 가입 의결 후 첫 포고(布告)는 ‘이명박 정부 심판’이었다. 과거에도 민노총 산하 전공노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정치적 이슈를 내건 시위와 총파업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규정(헌법 7조, 31조)도 이들에겐 장식품에 불과하다. 전공노는 2004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명수배’하는 포스터를 내건 일도 있다. 같은 해 전공노 청주시지부 조합원들은 복무조례 개정에 항의하며 ‘청주시장’이라고 적힌 천을 두른 개를 시청광장에서 끌고 다니기도 했다.

민노총은 지난달 대의원 대회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을 위한 조직적 대중적 토대를 구축하고 반(反)민주·반(反)평화통일 정책과 공안탄압을 분쇄한다”는 정치투쟁 노선을 고수했다. 민노총은 올 3월 경기도 산하 9개 공공기관 노조가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자 ‘각종 노사화합 선언에 참가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 갈등을 빚었다. 결국 9개 공공기관 노조는 민노총을 탈퇴했다.

이런 민노총 계열 노조에 국가기관의 규율이나 명령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것 같지 않다. 전공노 부위원장이라는 서울의 한 구청 8급 공무원이 국정감사 자료를 요구하는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뭔데 이런 자료를 요청하느냐”고 따지고, 의원 보좌관에게 막말과 욕설을 해댔다. ‘민노총 공무원’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통합공무원노조의 민노총 가입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61.5%로 나타났다. 국민의 공복(公僕)이어야 할 공무원이 과격투쟁에 매달리는 민노총과 ‘부적절한 결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금을 내서 월급을 주는 국민의 뜻이다.

박상조 울산시공무원노조위원장은 민노총의 노선과 대비되는 울산 경기 경북 충남 충북 강원 제주 등 7개 광역자치단체 공무원 노조의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 “대(對)국민 서비스를 맡고 있는 공무원이 민노총에 가입해 법에 금지된 집단행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변(辯)이다. 7개 광역노조연맹의 조합원 수(1만1000명)는 민노총 산하로 들어간 통합공무원노조(11만5000명)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판이한 길을 선택한 공무원 노조들이 맞게 될 운명도 앞으로 크게 달라질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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