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이야기<14·끝>문화재수리기능자 오동세 씨

  • 입력 2009년 9월 10일 0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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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동물에 생명 불어넣죠”
26년간 조류 등 수천점 박제
“학생들 학습도구 쓰일때 보람”

포효하는 호랑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 풀숲을 헤치는 구렁이…. 대전 서구 만년동 한밭수목원 인근의 천연기념물센터 1층은 작은 동물원이다. 움직이지 않는 박제 동물이지만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천연기념물센터는 천연기념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하고 그 가치와 중요성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건립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기관이다.

“죽은 동물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으로 박제를 만듭니다. 가장 멋있는 모습보다는 생전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작업의 목표지요.” 여기서 만난 문화재수리기능자 오동세 씨(50·자연문화재연구실)의 말이다. 이곳에 전시됐거나 수장고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오 씨의 작품이다.

그는 천연기념물이 죽은 채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으면 현장으로 출동해 수거해온 뒤 박제 작업에 착수한다. 동물원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은 천연기념물을 보내오기도 한다. 기자가 취재를 요청한 7일에도 그는 신고를 받고 충북 영동으로 출장을 간 상태였다.

동물이 손에 들어오면 우선 깃털 하나하나까지 말끔히 세척한 뒤 뼈와 조직을 꺼낸다. 가죽의 기름까지 모두 제거한 뒤 철사 등으로 자세를 잡고 내용물을 채워 넣어 본래 모습을 복원한다. 여기에서는 시간이 생명. 가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작업을 마쳐야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다.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작은 새는 2시간 안에 끝낸다. 겉모습 가운데 안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물의 본래 신체를 그대로 활용한다.

“복원했을 때 얼마나 생동감이 넘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해요. 하지만 동물이 제대로 복원됐는지 바로 알 수는 없어요. 3개월 정도 지나야 판가름이 나지요. 복원했을 당시의 모습이 그때까지 변형되지 않으면 일단 성공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잘 만든 박제는 반영구적이에요.”

오 씨의 박제 경력은 26년가량 됐다. 어려서부터 새를 좋아하던 그는 알루미늄 창호 제조 사업을 하던 1983년 한남대 자연사박물관에 갔다가 박제들을 보고 단번에 ‘이것이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박물관에 부탁해 박제의 기초 기술을 배워오다 2000년에 생긴 문화재수리기능자 시험에 합격했다. 문화재수리기사 시험이 아직 없어 현재 이 분야의 최고 전문자격증이다.

“지금까지 수천 점의 박제를 만들었어요. 그 가운데에서도 크기가 작은 새인 소조류(小鳥類) 전문이죠. 작은 것일수록 정밀한 기술이 요구돼요. 모든 새가 다 좋지만 특히 삼광조와 팔색조를 좋아합니다. 삼광조는 날개의 팔랑팔랑하는 느낌이 좋고 팔색조는 형형색색의 깃털이 참 예쁩니다. 만약 다시 태어나면 두 새 중의 하나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의 소조류 작품은 문화재수리기능자들 사이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박제에는 만드는 사람의 세심한 기술과 정성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인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별이 가능하다.

오 씨의 가장 큰 보람은 학생들이 박제를 관람할 때이다. “야생에서는 동물을 제대로 구경하기 어려워요. 박제로 학습한 뒤 다시 보면 비슷한 동물도 구별할 수 있지요. 내가 만든 작품이 학생들의 과학과 자연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유용한 학습도구가 된다는 사실이 가장 기뻐요.”

전쟁이 나서 천연기념물센터에 미사일이 떨어지면 박제부터 들고 나갈 것이라고 말할 만큼 작품에 애정이 깊은 오 씨는 “전시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과 생명력이 넘치는 최고의 박제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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